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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박인과  2009-05-04 17:13:31, 조회 : 2,312, 추천 : 173

반갑습니다.
좋은 시간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


편집장
선생님 작가의 약력 란에 약력 좀 올려주세요 ^^ 2009-05-08
16:05:22

 


편집장
창조문학신문 http://www.ohmywell.com 의 왼쪽 메뉴 녹색바탕에서 선생님의 작품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거기서 선생님의 줄을 클릭하십시오. 2009-05-09
00:33:52

 


신외숙
소설가 신외숙입니다.
윤정옥 선생님의 소개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들러주시고 소중한 댓글도 남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2009-07-24
09:44:40



박인과
어서 오세요 선생님, 그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 2009-07-24
10:03:08

 


신외숙
(단편) 마지막 사랑
신외숙

자동차를 타고 한길을 지난다.
가을 솜구름이 빌딩 한가운데 걸쳐져 있다. 살갗을 태울 듯한 맹렬한 더위도 시간에 좇겨 허겁지겁 도망친 모양이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강 쪽에서 몰아치고 있다. 바람은 살갗을 스치고 마음을 뒤흔든다.

열려진 차창 너머로 고급 카페 건물이 보인다. 저런 곳은 커피값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자동차는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구리시로 접어들고 있다. 옥수수와 잡풀이 바람에 흔들린다. 해바라기와 때 이른 코스모스도 덩달아 흔들린다.

자동차는 이제 굴다리 밑을 지나 강변도로로 접어들고 있다. 진녹색의 강물이 흐른다. 가뭄도 아닌데 개울물은 바싹 말랐고 강물도 말라 거의 도랑물 수준이다.

강 한가운데 솟은 바위 덩어리가 흉물스런 괴물처럼 보인다. 차량이 뜸한 틈을 타 엑셀을 힘껏 밟는다. 속도기가 180을 가리키고 있다. 차체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다. 자동차는 산과 강물을 끼고 시원스럽게 잘도 달린다. 뻥 뚫린 도로는 마음마
저 시원하게 한다.

"거 모처럼 원없이 달려보는구만."

그는 신이 나는지 콧노래까지 부른다. 이 길로 곧장 가면 양평이 나온다. 거기에 가면 그들이 잘 가는 카페가 있고 그곳에선 한때 유명했던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는 그녀의 옛애인이었고 남자와도 절친한 관계에 있다. 이제 그들은 모처럼 만나 회포를 풀 작정이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브래지어의 끈을 손으로 끌어올리며 남자의 어깨에 기댄다. 그가 한쪽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자동차는 이제 간선도로로 접어들고 있다. 주변에 한갓진 농촌풍경이 보인다. 인가(人家)와 음식점도 보인다. 상가 건물과 진녹색의 강물이 동시에 보인다. 교각을 지나자 이윽고 풍차 모양의 건물 앞에 차량이 멈춘다. 하얀 목조 건물이다. 겉모습에 비해 내부 장식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탁자와 소파 커피잔 집기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고급 일색이다. 그 한가운데 무대가 설치돼 있다. 피아노 옆에 마이크와 연주용 높은 의자가 보인다. 가수가 기타를 들고서 연주할 자리이다.

"상모씨 이쪽으로."

그녀는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탁자에 가 앉는다. 그 자리는 로얄석이지만 주인의 특별배려로 그들은 항상 그곳을 차지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가수가 나타날 시간이다. 그녀는 남자의 팔을 끌어다 자신의 무릎 위에 놓으며 무대를 응시한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허벅지를 더듬는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장악하고 있다. 가을은 햇빛을 단축하고 밤을 재촉한다.

여기저기 연인들이 보인다. 그들은 이 밤을 위해 멀리서 날아온 사람들이다. 가깝게는 서울에서 멀리는 대전 대구에서. 아는 이들의 눈길을 피해 아주 멀리 날아온 것이다. 그들은 밤과 야합하고 다음날 아침이면 자신들의 일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의 행동을 파기할 것이다.

영혼의 일탈을 위해 잠시 연기(演技)한 것으로 치부하고 말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감정적 쾌락을 위해 육신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며 가을날만 되면 여행을 떠났다. 짙푸른 초록과 함께 선팅한 자동차에 몸을 숨기고 엑셀을 힘껏 밟았다.

그러다 그들 중 어느 한쌍은 너무 힘껏 엑셀을 밟는 바람에 무인 카메라에 찍혀 상대 배우자들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어느 쌍은 마주 달려오는 차량을 피하려다 전복되는 바람에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케이스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여행길에서 부모가 한꺼번에 상(喪)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란 나머지 핸들을 잘못 꺾어 강 언덕 아래로 추락, 급사한 경우도 있었다. 홀로 남은 아내는 가족장을 치르며 유전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시부모 역시 변괴로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남편의 불륜을 눈치 챈 시어머니가 심장발작을 일흐켜 응급실로 실려가자 시아버지가 병원으로 가던 도중 마주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 즉사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남편과 시부모상을 한꺼번에 당한 아내는 남은 재산을 놓고 시동생과 머리 터지게 싸웠다 한다.

더 기가 막힌 건 모텔에서 나오다 대학생인 아들과 마주치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여자도 있었다. 어떤 남자는 그 야합의 현장에서 직장 동료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은근히 동지애를 느꼈다나……. 그들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묵언을 신호로 서로의 비밀을 약속했다. 그들은 모두 신분계층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어울렸다. 아마도 그들은 죽음이라는 전제 하에서도 어울릴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미쳐 있으니까.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가수의 공연이 끝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삼삼오오 흩어진다. 주변에 있는 모텔과 민가로 쌍쌍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 모텔에선 밤마다 세기말적인 말세 현상이 벌어진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은 종말의 극단으로 치달으며 정신과 육체가 파멸의 위기를 당할 것이다. 그들 중에는 성전환자도 있고 동성연애자도 있다. 지하 나이트 클럽에서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선언한 밤무대 가수도 있다. 그들의 환락에는 마약과도 긴밀한 연계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종종 폭력배와의 칼부림도 발생하곤 했다.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그들의 환락파티는 암암리에 진행되었다. 더 이상 숨겨질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들에게 기막힌 소식이 들려왔다.

회원 중 하나였던 여자가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끝까지 숨기기 원했지만 남편의 신고로 들통나버리고 말았다. 현재 그녀의 남편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다고 했다. 자녀들도 눈치 채고는 밥도 못 먹고 학교도 못 다닌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남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살충동까지 일흐켰다.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감기증상이 일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그들은 죽음보다도 일상에서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러니였다. 죄악을 행하는 데는 담대한 그들이 사람들과의 격리를 두려워하다니, 일탈은 결국 족쇄였다. 쾌락에 몸과 마음을 저당 잡힌 중년남자는 카드빚에 좇기다 못해 사채까지 빌어 써 마침내 폭력배의 칼침을 맞고 쓰러졌다. 그가 끝까지 장기(臟器) 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잘 하는 어떤 노처녀는 국제 마약단에 연루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녀 한 사람 때문에 회원들은 차례로 수사본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래서 한때 조직이 와해되는 게 아닌가 근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건은 아직까지 미제로 남아 있는데 언제 또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안과 함께 쾌락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한가지 특징은 그들은 모두 본거지가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 쾌락에 목숨 걸고 신(神)을 부정하는 악마적인 심리. 그것은 그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그들은 얼굴의 양면을 철저히 악용했다.

직장에서는 교양 있고 능력 넘치는 고급 두뇌였고 가정에서는 양의 탈을 뒤집어 쓴 가장이었다. 삶의 정상궤도 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일탈을 추구했다. 허무와 무의미로 뚫린 가슴속으로 술을 붓고 거짓과 맹세했다. 그들의 마음과 귀는 언제나 악마에게 열려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알려고도 묻지도 않았다.

바다이야기에 빠져 죽은 한 사내가 있다.
처음에는 경마에 빠지더니 나중에는 사행성 오락 게임인 바다이야기에 그만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평상시에도 자주 중독에 빠지곤 했었는데 이미 알코올 중독에 절어 있었다. 기분 나쁘면 폭력을 휘두르고 잠을 못 이루고 가족을 괴롭힌다. 늘 핏발 선 눈빛에 그는 감정과 이성의 기능을 상실한 터였다.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그는 의지를 악마에게 저당 잡힌 채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그 한 사람의 파산으로 온 가족은 살길을 잃었다. 밀린 카드빚으로 곧 집달리가 닥칠 위기임에도 남편은 여전히 바다에 빠져있다. 절망한 아내는 불면증 증세를 초래하고 하루종일 전화도 불통이다. 사람들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에 심취되기 원한다.

불안은 마약처럼 사람의 뇌를 손상시키는 기능을 한다. 불안은 마음의 지옥이며 불행의 원초이다. 불안에 쫓긴 여자가 영등포 거리를 걸을 때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뭐니 뭐니해도 마음 편한 게 제일이여."

그 옆에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던 초로의 남자가 말했다.

"인생을 향한 뜻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닌 평안이라"
평안 평안…….

여자는 시장 모퉁이에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남자들이 막걸리에 소주를 가득 부어 마셨다. 이른바 폭탄주였다. 불안도 함께 따라 마셨다. 경쟁사회에서 밀리는 것은 곧 죽음이다. 언제 백수가 될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불안과 함께 목줄을 죄었다. 여자는 한 귀퉁이에 앉아 술을 대접에 따라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취기가 돌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때묻은 옷깃을 보며 남자들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자는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정신은 더욱 말똥말똥해졌다. 선술집을 나온 여자는 좀 전에 걷던 거리로 나왔다. 여자의 마음속에 음성이 들려왔다. 마음 마음. 평안. 평안.

장난감을 파는 문구점과 식당가를 지나 발걸음을 대로변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쿵쾅거리는 카바레 음악이 들려왔다. 중년남녀가 서로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채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이쪽은 물론이고 길 건너편 쪽에도 온통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함께 도심이 쾌락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검은 길바닥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거리를 걸어가는 발걸음이 있었다.

이마에 내천(川)자를 그린 그는 체격이 건장하고 팔뚝이 굵어 언 듯 폭력배를 연상시켰다. 그가 어깨를 흔들며 카바레 건물로 들어섰다.
순간 그의 몸에서 전단지가 툭 떨어졌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옆에 난 글자도 보였다. 「부킹 전문 100% 성사」

아하! 그러고 보니 그는 폭력배도 제비족도 아닌 카바레 웨이터였다. 카바레는 얼굴에 흉악이라고 써진 남녀들이 모두 발악을 하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춤을 추며 쾌락을 꿈꾸는 걸까. 춤과 쾌락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폭력배로 보이는 어깨들과 꽃뱀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홀 안을 오가며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돈과 쾌락과 춤, 암투와 광기가 사람들 입가에 오갔다. 때마침 광란의 음악이 홀 안을 강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스테이지로 뛰쳐 갔다.

그 순간 밖에서는 새로운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의 팔목을 잡아 챈 여자들이 서로 주도권 쟁탈전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들은 악덕 포주 같았다. 포장마차에서 들리는 괴성과 함께 그들의 싸움은 점점 양상이 심해갔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싸움이 일제히 멈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거리 쪽에서 손에 칼자루를 쥔 한떼의 검은 복장의 남자들이 떼로 몰려든 것이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다. 한바탕 광란의 난투극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데 다음 순간, 거리에 명함 크기의 흰 종이가 떨어져 나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퇴폐 업소 광고 전단지였다. 전단지 위로 여자의 눈물방울처럼 빗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여자의 나체 모습과 함께 글귀가 눈을 자극했다.

TO. 오빠
요즘 많이 덥고 힘들지?
오빠가 힘들어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지 않다.
잠시나마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내가 이쁘게 써비스 해 줄게!!
한번 놀러 올 거지? 오빠?

맨 마지막 하단 부분에 카지노 남성 스포츠 마사지라고 씌어 있었다. 그 밑에 빨간 글씨로 난 글자는 더 기가 막혔다. 일본식 마사지 러브 샵.

요즘은 인칭 대명사가 혼란에 빠진 세상이다. 가족 간의 호칭이 온통 타인에게 전이되어 누가 가족인지 남인지 모를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빠 동생 형 누나 등 친족인지 애인인지 불륜인지 온통 모를 세상이 되어버렸다. 거리는 밤 기운에 포로 된 영혼들이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한 60년대 식 슬레이트집이었다. 그곳은 정육점과 세탁소, 여관과 미용실 중간에 있었다. 그곳은 막다른 골목이어서 더 이상 갈 곳도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향해 몸을 옮겼다. 이기심과 탐욕을 가지고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이상한 고정관념에 휩싸였다. 새파란 지폐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자마자 악마의 검은 손이 잽싸게 삼켜버렸다. 불안과 파멸이 계속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데도 그들은 정신과 돈을 맡기고는 스스로 나락에 빠졌다. 한번 나락에 빠진 영혼들은 다시는 그곳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편이 경마와 술 중독에 빠진 이후, 더욱 더 악해졌다. 집안 살림은 내팽개치고 온종일 나가 살았다. 카드빚은 나날이 불어나는데 옷은 최고급으로 연일 사들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 술과 식사를 대접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BC카드를 꺼내 척척 긁어댔다. 그러다 어느날 카드 정지를 먹자 거의 미칠 듯이 당황했다.

돈이 바닥나자 그녀는 극단의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팔기로 한 것이다. 남편이 경마장으로 갈 때 이용하는 독일제 에쿠우스였다. 나중에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우선 현찰이 급했다. 물론 남편이 아는 날이면 그때는 제삿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찬사가 그리웠다. 너 참 괜찮은 여자다. 너 참 예쁘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구나. 별별 찬사를 다 듣고 싶었다. 생각 같아선 간이고 쓸개도 다 빼주고 싶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집단 패싸움을 해 정학 맞을 위기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조건 사랑받고 싶었다. 그것도 오직 자기 한사람만 바라보고 사랑하는헌신적인 사랑을. 그러나 남편은 신혼 초부터 주먹을 휘둘렀다. 처음부터 애정 없는 결혼을 한 남편은 자식을 미끼로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그녀에게 진저리를 쳤다. 임신했으니 책임지라는 말에 그는 도리질을 했다. 애정 없는 결혼은 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아내는 오빠와 일가친척까지 동원해 결혼을 강행했다. 주제에 걸핏하면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감시하며 아내 노릇을 하려 들었다. 심지어 핸드폰 내역까지 따지고 들었다. 안 그래도 애정이 안 가는데 아내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갔다. 더구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부부관계까지 요구했다. 아내는 큰 몸집에 얼굴이 검고 못생긴 축에 속했다. 성격도 여자답지 않게 괄괄했다.

결정적인 건 애정결핍 증세가 심하다는 거였다. 사랑 받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데 완전 병적이었다. 그는 날마다 술에 취해 들어왔다. 한번도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지냈다. 밥도 나가서 먹었다. 아내는 안달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사랑해 달라고 안아 달라고 향수를 뿌리고 난리를 쳤다. 그러나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럴수록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을 했다. 태아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뻔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내가 자신의 팔을 잡고 늘어지면서 한번만 안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후각을 자극한 건 알코올 냄새였다. 이 여자가 술을 먹었구나. 임신한 여자가.
이게 완전 미쳤구나.

그가 뿌리치자 아내는 배를 움켜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배가 아픈 건지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함인지 알 수 없었다. 분노가 치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뺨을 후려쳤다.

"지겨워 지겨우니까 제발 그만 하자구."

다음 순간 아내의 표정이 독사처럼 변했다.

"내가 내가 그렇게 싫어? 그럼 왜 결혼했어?"

"그걸 몰라서 묻냐?"

그는 아내의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뱃속에 든 아이 때문에 할 수 없이 했다는 뜻이다.

"그럼 왜 아이는 갖게 한 건데?"

아내는 끝까지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니가 하도 보채서, 그날 밤 아무래도 내가 미쳤던 모양이야, 내 실수였어."

"뭐 실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아내는 분하고 슬퍼서 곧 쓰러질 기세였다.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서 곧바로 단골 술집으로 갔다. 더 이상 아내의 얼굴을 본다는 건 고역이었다. 그후 그는 걸핏하면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둘째 아이가 또 태어났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랑타령을 잠시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날마다 그에게 몸짓을 했다. 중년이 되자 몸집이 더 불어났다. 배가 나오고어깨가 두꺼워 역도 선수 같았다.

욕구불만을 식욕으로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날이 갈수록 거구로 변해갔다. 그가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주는 대도 어디서 끌어다 쓰는지 옷도 자주 해 입었다. 그는 일체 모른 체했다. 그리고 도박에 빠졌다. 싫은 여자와 살 맞대고 사는 것처럼 고역이 없었다. 도박에 빠지는 순간에만큼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너 그렇게 네 마누라가 싫으냐, 그렇담 차라리 이혼을 해라."

"자식들은 어떡하고?"

"그래도 자식이 걱정되긴 하는구나. 그러게 애저녁에 실수를 말았어야지, 왜 건드려 건드리길 처음부터 조심했었어야지."

그는 도박빚에 몰리자 마지막으로 에쿠우스 자동차를 팔 생각을 했다. 자동차를 팔아 빚을 청산하고 아내와도 갈라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아내가 한 발 앞서 있었다. 아내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자동차를 매매 시장에 헐값에 내놓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아내의 행방부터 찾았다. 대낮에 집안에 들어 선 그는 쓰레기장처럼 변해버린 거실과 안방을 보고 놀랐다. 옷가지가 흩어져 있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언제 들어왔는지 도둑 고양이가 똥을 싸 난리도 아니었다. 더 놀란 건 아이들의 행방이었다. 아들은 집 나간 지 달포가 넘었고 딸은 친구와 함께 동네 PC방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은 이미 각종 경매에 붙여진 지 오래 되었다.

"네 이놈의 여편네를."

그는 처음으로 아내의 부재를 실감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내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신호음은 가는데 받지 않았다. 일부러 안 받는 건지 아님 어떤 놈팽이와 놀아나느라 받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초조한 그는 계속 핸드폰을 걸었다. 이윽고 술 취한 아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내는 이미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 너 거기 어디야, 당장 들어오지 못해?"

"누구시더라?"

일부러 그러는지 아내는 과장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주변에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카바렌지 아님 음란 퇴폐업소인지 남자들의 거친 입담도 들려왔다. 그는 그만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너 너 누구 맘대로 내 자동차 내 놨어?"

"자동차?"

그제서야 아내는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크윽! 하고 트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누군가 아내의 어깨를 내리 친 모양이었다.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아내의 입에서 악!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이내 잠잠해졌다. 가슴에서 쿵! 하고 절벽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아내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된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그는 잠시 몽롱한 환상에 빠졌다. 아내는 지금 카바레나 아님 술집에서 쓰러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서 아마도 정신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아내는 거기에 가게 된 걸까.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자책감이 들었다. 언젠가 소책자에서 본 '남편의 무관심이 부른 화근'이란 제목 글이 생각났다. 여자는 누군가에게 항상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싶어한다. 그것이 충족되어지지 않을 때 여자는 방황한다. 아이들도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돌며 불륜의 싹을 틔운다. 극단적인 표현 같지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었다.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났을까. 그는 또다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한번쯤, 단 한번만이라도 눈길을 주었더라면 아내는 빗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방지축 날뛰며 돌아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도리만 제대로 했더라면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했을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가 어쩌다 그런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그나저나 아내의 행방부터 찾는 게 급선무였다. 방금 전까지는 자동차 문제가 시급했는데 그건 생각에서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아내의 경대를 뒤지다 명함을 발견했다.

카바레의 위치와 웨이타의 얼굴 사진과 함께 핸드폰 번호가 적혀져 있었다. 그는 당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가 카바레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들것에 실려 나가는 여자를 보았다. 긴 머리칼이 시트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는 돌아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자 잠깐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사람들은 들것을 앰뷸런스에 옮겼다. 그는 큰 소리를 지르며 자동차로 뛰쳐 올라갔다.

"뭐야?"

얼굴에 마스크를 한 남자가 그를 강하게 밀쳐냈다.

"저 제 집사람이……."

그는 들것에 실린 여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시트 자락을 걷어냈다. 얼굴에 시퍼럼 멍자국과 함께 무엇에 찔렸는지 가슴에서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체격이 날씬 한 게 아내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긴 절망감 속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는 급하게 앰뷸런스에서 뛰어 내려 아내에게 다시 핸드폰을 걸었다. 받지 않았다.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도대체 아내는 어떻게 된 걸까.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벽력같이 울렸다. 그야말로 벽력같이.

"여 여보세요?"

"네 에쿠우스 자동차 팔려고 내놓으셨죠?"

난 또. 그는 속으로 적이 실망했다.

"그 그런데요."

"네, 적임자가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그건 만나서 이야기하시고요 당장 이쪽으로 오실 수 있죠?"

그는 당장 돈이 필요했기에 지체 없이 달려갔다. 얼마 전 끌어다 쓴 사채업자에게서 빚 독촉이 빗발 같았다. 그가 자동차 중개업소 사무실을 들어서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가 아무래도 눈에 익었다. 어디서 만났을까. 도박장에서 만났을까. 아님 술집에서 만났을까. 그도 아님……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남자와는 클럽에서 만났다. 조직을 통한 비밀 클럽이었다. 남자도 눈치를 챘는지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속으로 움찔했다. 하필이면 여기서 만날 게 뭐람. 약점을 잡히기라도 한 듯 그는 기분이 착잡했다.

"급매물이 있다고 해서 나왔더니, 이거 구면이구만요."

남자는 어떤 기대감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알 수 없는 공감대가 둘 사이에 흘렀다. 그는 언젠가 갔던 장소를 떠올렸다. 양평의 어느 호젓한 장소였던 것 같다. 그때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이 끝난 뒤, 각기 약속된 장소로 향하는데 남자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었다. 남자는 체격이 우람하고 잘생긴 편에 속했다. 자동차는 항상 렌터카를 이용해 잘 모르겠지만 돈도 꽤 있어 보였다. 옷매무새가 고급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그와 우연히 동행하게 되었을 때 남자는 말했었다. 상대 여자가 러시아어
를 잘 구사해 처음엔 외국인인가 착각했었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까 국제 통역사였다나.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국제적인 마약책과 연루된 스파이였다. 그녀가 어쩌다 거기까지 스며들게 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녀 덕분에 회원 모두가 경찰서 특수 수사대에 불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는 사실 외에는.

그런데 그 기분 나쁜 기억이 남자를 통해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재수없게스리.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남자가 과연 에쿠우스 값을 얼마나 쳐줄까. 인상 봐서는 제대로 쳐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나마 다행인지 모른다. 아내보다 먼저 자신이 팔게 되었으니까. 만일 아내가 먼저 선수를 쳤더라면 그나마 있던 자동차 날리고 나서 노숙자가 될 판이었다.

"얼마나 쳐 드리면 될 것 같습니까?"

"시세로 따지면야, 사실 자동차 산 지도 얼마 안 되고 해서, 사실 자식 같은 놈입니다. 워낙 급하다 보니……."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제가 섭섭지 않게 쳐드리겠습니다. 대신……."

남자가 은근히 운을 떼려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저 이순지씨 남편 되시는 분이죠?"

뜬금없이 묻는 말에 그는 아연 긴장했다.

"무 무슨 일이시죠?"

그는 너무도 당황해 몸이 덜덜 떨렸다.

"여기는 ○○경찰서입니다. 확인할 게 있으니 좀 나와 주셔야겠습니다."

"확인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글세 나와 보시면 압니다."

찰칵하고 전화 끊는 소리가 났다. 그는 너무 마음이 급해 할 말을 잊었다.

"우리 지금까지 무슨 말을 했죠?"

그가 남자를 향해 묻자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일입니까 혹 경찰서?"

어떻게 눈치 챘을까.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마치 자동차와 관련된 일이기라도 한 듯 그는 긴장하는 기색이었다.

"그 그게 아니고 집사람이, 그 망할놈의 여편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자, 그럼 다시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그러나 남자의 태도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저 잊고 있었던 급한 일이 생각나서 나중에 만나서 협상하도록 합시다, 그럼 이만 바빠서."


남자는 마치 도망치듯 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멍해졌다. 망할 놈의 여편네 어딜 가나 속을 썩이는구만. 그나저나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경찰서에서 호출이란 말인가. 갈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방금 전 자동차 매매 사건이 무산된 데다 아내 문제 때문에 경찰서까지 가야 하다니 그는 머리가 복잡해 당장이라도 이승을 하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박할 때는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고 살 판 나더니 경찰서 소리가 나니까 갑자기 머리가 확 돌아버릴 것 같았다.

자업자득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 자책의 음성이 들려왔다. 요즘 따라 자책의 음성이 자주 들려오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내부에서부터 조짐이 보이는 게 이상했다. 평생 양심의 가책 따위와는 무관하게 지낸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요즘 따라 마음 속에 반성의 기운이 싹트는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중개업소 사무실을 나와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망설이다 버스를 탔다. 에쿠우스를 타고 다니다 버스를 타기란 학창 시절 이외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내와 자식들에겐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고는 자신은 언제나 고급 승용차를 이용했었다. 그래야 술집에서든 도박장에서든 큰소릴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신세가 말이 아니구나. 썅! 욕이 나왔다. 그가 발걸음을 버스에 올려놓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손님 요금 내셔야죠."

"요금? 얼맙니까?"

그는 정말 몰라서 물었다.

기사가 그를 아래 위로 내리 훑더니 말했다.

"천 원입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여 천 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었다. 썅! 인간 유인철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순간 그의 눈에 짧은 팬츠를 입은 여자의 빼어난 각선미가 들어왔다. 키가 170센티쯤 되었을까. 날씬한 체격에 다리 곡선이 환장할만큼 예뻤다. 나이는 삼십쯤 되어 보였다. 어떤 놈인지 복도 많지.

그 와중에 그는 여자의 남편 아니 애인일지도 모를 사내를 향해 강한 질투심을 나타냈다. 아내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떠올랐다. 욕구불만을 오직 식욕으로 해결하느라 배가 나오고 육중한 체격으로 변해버린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불쑥 나왔다.

망할 여편네 못난 주제에 사고까지 치다니, 그것 때문에 경찰서 출입이 웬말이냐. 그러나 그 소리는 이내 사그러 들고 자책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죽 했으면 그 짓거리까지 했을까. 남편이란 게 밤낮 여편네 구박이나 하고 도박이다 술에 미쳐 돌아드니 어떤 여자인들 제정신 갖고 견뎌내겠는가. 참으로 이상했다. 다 늦은 중년에 철이 나려나. 그나 저나 현 상황을 바라보니 재앙이 따로 없었다.

돈 문제도 문제려니와 아이들도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아내는 아내 대로 저 모양이니, 생각할수록 자신의 불찰이 컸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경찰서 조사계로 들어가는 동안 내내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아내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한 건 아닐까. 이 여편네가 혹시? 그는 카바레 입구에서 보았던 앰뷸런스를 떠올렸다. 아니지 고개를 흔들었다. 미리 방정 맞은 생각은 말자. 그 순간 그는 마음이 아주 넓어지는 것 같았다.

아내가 무사하기만 하다면 무슨 일이 있었든 다 용서할 것 같았다. 갑자기 넓어진 포용력으로 조사계 문을 여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아내가 웬 남자와 더불어 몸 싸움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 호통을 치는 데도 둘은 멈추지 않고 계속 욕설을 퍼부어 대며 싸움을 했다. 싸움의 발단은 이러했다.

남자는 아내가 돈 많은 이혼녀라고 해서 돈을 빌려 주었는데 알고 보니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자와 원금을 갚으라고 했는데 아내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혼녀라고 한 일도 없고, 더구나 돈을 빌린 일은 더더욱 없다고 했다. 남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이혼녀라고 할 이유도 없고 또 뭐가 아쉬워 남의 남자에게 돈을 빌리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에 멍자국이 파랬다. 얼마나 맞았는지 거무튀튀한 얼굴에 퍼런 멍자국이 무슨 삼류 영화를 보는 듯 사태를 짐작케 했다. 그런데 저 둘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혹시?

"저 여자가 그 카바레에서 제일 돈을 물 쓰듯 잘 썼다니까요."

"야! 그렇다고 돈을 차용증도 안 쓰고 빌려 주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형사로 보이는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를 왜 패냐 패길, 넌 상해죄에 걸린 거야, 알았어."

형사가 말하자 남자가 분하다는 듯 말했다.

"글세 저 여자가 먼저 내 바지를 물고늘어지면서 이렇게 이렇게 했다니까요."

남자가 자기의 주먹을 사타구니를 향해 쳐들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자와 아내는 카바레에서 만난 그렇고 그런 사이 같았다. 서로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만났는데 서로 물렸다는 주장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야! 망할 연놈들아 그러게 누가 돈을 꿔주고 빌려주고 하랬어?"

그가 대뜸 욕설부터 퍼붓자 남자와 아내는 그제서야 그의 존재를 눈치 챈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도대체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

그러자 형사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우선 누구의 이야기가 맞는 건지 확인도 필요하고, 아드님이 학교에서 패싸움을 하고 사라진 모양입니다."

"예? 패싸움요? 사라져요? 누가요?"

그가 놀라서 거듭 묻자 아내도 그제서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우리 아들이 패싸움을 하고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제서야 정신이 드냐? 이 정신 나간 화냥년아."

그가 아내를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자 아내가 말했다.

"내가 화냥년이면 넌 뭔데? 이 나쁜놈아."

아내가 지지 않고 말 대답을 했다.

"이 양반들 여기서도 쌈박질이네, 자 그건 그렇고 아들이 갈만한 데가 어딥니까, 저쪽에서도 찾고 하니 서로 좋게들 타협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저쪽이라뇨?"

"아! 댁의 아들이 때려서 상처 입힌 피해자 학생 말입니다, 지금 병원서 진단서 끊어 가지고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갈수록 태산이었다.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오직 자기 한몸만 위하고 살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죄악을 행하는 데는 담대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더니 막상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닥치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아내의 불륜의 현장과 아들이 패싸움이라니, 피해 학생의 부모에게 위자료까지 물어주어야 하다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하고 끝맺음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머릿속에서 불길 같은 것이 치솟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내의 태도는 너무도 태평했다. 마치 남의 집 불구경 하듯 관심조차 없었다. 저 여자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한 순간이나마 아내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자책했던 자신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아내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지금 집이 경매에 붙여져 언제 넘어갈지 모르고 위자료 해 줄 능력이 없으니 감옥에 가두든지 마음대로 하쇼."

형사가 어이가 없는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봐 당신들, 당신들 부모 맞아?"

형사가 이번에는 아내를 향해 말했다. 아내는 남자와 핏대를 올리며 싸우다 실성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지금 당신 아들이 학교에서 패싸움해서 철창 신세지게 되었다구 알겠어?"

"우리 아들이라구요? 아들."

아내는 잠시 정신이 드는 듯했으나 이내 정신나간 소리를 했다.

"그건요 저 사람보고 해결하라 하세요, 저 사람이 애비되는 작자니까요, 사실 저
인간은 애비 될 자격도 없어요, 맨날 술만 처먹고 도박이나 하고 처자식 두들겨 패기나 하고, 그러니까 아들이 미쳐서 패싸움한 거라구요."

"그러는 너는 안 미쳐서 카바레 가서 놈팽이랑 붙어 먹냐, 이 정신나간 년아."

"피장파장 막가파가 따로 없군."

곁에서 지켜보던 또다른 형사가 말했다.

그때였다. 그의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시경(市警)에서의 출두 전화였다. 제작년에 국제마약단 사건에 억류되었을 때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였다. 그가 또 무슨 볼일이 있다고 전화를 한 걸까.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사건이 미제로 끝나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또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별건 아니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으니까 그때 조사 받았던 곳으로 오십시오."

또. 짜증이 울컥 일었다. 그러면서 불안이 태풍처럼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사건의 단서를 잡기 위해 끈질기게 질문을 유도하던 담당 형사가 생각났다. 단지 회원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나 큰 곤욕을 치른 것이다.
에이 썅!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형사가 물었다.

"아니 지금 이야기하다 말고 어딜 가요?"

"시경(市警)에요, 에이 또 귀찮게 되었네."

그는 형사에게 아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가 엄마 되는 여자니까 알아서 하쇼."

"이거 완전 콩가루 집안이구만."

형사는 기가 막힌지 남자와 아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자포자기. 막가파, 인생막장, 이판사판 갖가지 불길한 단어들이 떠올랐다. 형사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아내와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문을 박차고 나와 시경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집어 탔다. 그날 끝내 합의를 못한 아들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경매에 붙여진 집은 세금과 은행 대출금 상환으로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일 주일 후 정신을 차린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식의 가출과 남편의 잠적으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결국 악의 종말은 파멸이었다.

시경 입구에 이르렀을 때 그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 나왔다.

"야! 이거 유인철 인생 너무 막 가는 거 아냐?"

그는 조사실이 있는 7층을 누르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탄식했다. 그가 조사실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김상모? 그 뒤에 또 다른 얼굴도 보였다. 그와 함께 했던 여자였다. 그 뒤에 또 다른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조직에 몸담았던 회원들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들은 불안감과 동시에 적대감을 나타냈다. 혹시 너가? 모두 서로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한때 서로 은근한 동지애로 비밀을 공유했던 그들은 격랑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국제마약단 사건의 본말은 이러했다. 얼마 전 시내 모처에서 발생했던 폭력배들의 패권 싸움에 국제적인 마약단이 연루된 사실이 경찰에 포착되었다. 그런데 그 사건에 조직의 회원이었던 김상모가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관여돼 있었다.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여자가 옛애인과 그러니까 김상모의 친구였던 가수와 재결합하면서 마약이 본격적으로 조직에 유입된 사건이 밝혀진 것이었다.

가수였던 친구는 처음에는 대마초를 피웠다가 다시 코카인으로 히로인으로 마지막으로 공포의 백색가루인 히로뽕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것이 회원들에게 알게 모르게 유입돼 중독현상을 일흐켰던 것이다.

회원중의 하나였던 여자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검사 도중 마약 중독 증세가 나타나 수사에 착수한 결과 사건의 본말이 밝혀진 것이었다. 쾌락 중독과 화인 맞은 양심이 빚어낸 극단의 결과였다. 히로뽕이 어떤 경유로 유통되었는지 또 어디로 흘러갔는지 조사하던 중 회원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졌음이 증명되었다. 그날 시경에 불려온 사람들은 모두 심각한 마약중독 증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수없이 주사바늘이 꽂힌 팔뚝을 손으로 쓸어 내리며 환청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핸드폰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핸드폰을 열며 강박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 소문을 들었는지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국제적인 마약단 사건에 어떤 사람들의 명단이 들었는지 알기 위해 머리 터지게 경쟁하고 있었다. 서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욕심에 해괴한 질문을 마구 퍼부으며 범인들의 윤곽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중의 한 기자가 연예인 출신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말야, 에이즈란 소문이 있던데 맞습니까?"

어디서 들었는지 그는 소문의 근거까지 대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 몰려 있던 여자들이 갑자기 발악을 하며 울부짖었다. 남자들은 모두 한발 뒤로 물러서며 공포심을 나타냈다. 남자가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흔들자 기자는 또다시 물었다.

"당신 작년에 커밍아웃 선언한 것 맞잖아요."

그러자 여자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기자들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기사 작성하기에 바빴다.

다음날 일간지 톱기사를 어떤 문구로 장식할까. 고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국제적인 마약단과 연루된 사회 저명 인사들. 그들의 현장 취재를 가다」

그들 중 유인철은 직간접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였다. 그는 마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다만 조직의 핵심이었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가 파편을 맞은 피해자일 뿐이었다. 그는 이미 가정과 경제가 파탄 나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는 상태에서 최대의 기로에 선 셈이었다. 언젠가 느꼈던 자책감이 정죄감과 더불어 소리도 없이 목울대를 채웠다.

망신살이 뻗친 회원들 중에는 사회 저명 인사와 젊은층도 있었다. 그들은 몰려드는 기자를 향해 두 팔을 내저으며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다음날 일간지에 모두 대서 특필됐다. 기자들은 세기말적 말세 증상이란 표현으로 그들을 매도했다. 그들 중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들은 모두 중독에 빠지고 정신적 감옥에 갇혀 제정신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죄악의 온상지에서 살다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고 자긍하고 교만하다 끝간 지옥까지 떨어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을 부정하고 조롱하다 스스로 죄의 결과를 자초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었다. 」

신의 마지막 사랑까지 외면한 그들은 블랙홀을 빠져나가면서 마지막으로 절규했다. 그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쫒으라」

2009-08-03
10:16:24



신외숙
임플란트

신외숙







지난해 여름 이야기다.

윗 송곳니에서 자주 진물이 나면서 흔들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어느날 앞니가 삐죽히 튀어나와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드라큐라 같았다. 짐작하건데 풍치가 재발한 모양이다.

가슴이 덜덜 떨렸다. 7년 전에 했던 풍치 수술의 공포가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놀란 가슴으로 풍치수술을 했던 대학 병원으로 달려갔다.



입안을 들여다 보고 난 의사가 말했다.

"풍치는 아니고 이 뿌리가 약해져 그런 거니까 임플란트 해야겠습니다. 우선 가짜 이빨 본부터 뜨시고."
"네에 임플란트요?"

순간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 엄청나게 아프다는 임플란트 말인가요?"
"예, 그럼 이렇게 흉하게 튀어나온 이를 그냥 둘 작정이신가요? 빼고서 임플란트 하고 나면 감쪽 같아질 겁니다."
의사는 너무도 태연하게 당연스럽다는 듯 말했다.



8년 전, 대학 병원에서 구강암 정밀검사를 받고 났을 때의 일이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풍치 수술 받으셔야겠습니다. 풍치가 너무 심해요."

"풍치수술이란 게 어떤 건데요?"

"잇몸을 째고 농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받으십시오."

처음에는 수술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었다. 잇몸을 째다니, 농을 제거하다니, 그러나 한시가 급하다 하니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 주일 후 대학 병원에 가 마취 주사를 맞고 수술에 들어갔다. 마취 주사를 잇몸과 얼굴 안쪽에 6-7대는 맞은 것 같다. 얼굴 전체가 굳어지는데 마치 석고상이 된 것 같았다.

30분쯤 지나자 의사가 칼로 잇몸을 째는데 악력(握力)이 느껴졌다. 강한 힘이 잇몸을 누르는데 턱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잇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혀를 적시는데 찝찔했다. 잇몸을 째고 날카로운 금속기구로 이뿌리에 있는 농을 제거하는데 턱 전체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기구가 이뿌리를 건드릴 때마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늘로 잇몸을 봉합하는 모양이었다. 푸욱! 하고 바늘의 깊이가 느껴지면서 팽팽한 실이 얼굴을 스쳤다. 껌 같은 이물질이 잇몸 위에 붙여지고 수술이 끝났다. 수술대에서 내려오는데 지옥을 여러 차례 왕래한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가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이 아팠다. 마취가 풀리면서 또다시 통증이 시작되는데 입을 벌릴 수조차 없었다.

신경질이 나면서 통증이 자꾸만 정신을 분산시켰다. 사랑니를 빼고도 진통제 없이 잘 견딘 나였는데 풍치수술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 끔찍한 수술을 네 번에 걸쳐 받는데 그 부위가 부어 올라 얼굴이 완전 기형으로 변했다. 계속 진통제를 먹는데도 통증이 일 주일이나 이어졌다.


그런데 임플란트라니…….

잇몸을 째고 턱뼈를 드릴로 뚫어 인공이를 심는다는 수술 아닌가. 말만 들어도 끔찍했다. 임플란트 하면 우선 연상되는 게 엄청난 통증과 수술 비용이다. 수술 과정이 워낙 고난도의 기능을 요하는 것이라 그만큼 힘들고 비용도 비싸다. 의료보험 혜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임플란트를 한 여자들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수술을 한 뒤, 3일 밤낮을 누워 지냈다고 한다. 수술 후유증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임플란트도 많이 발전해 레이저 무통 클리닉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단번에 레이저로 구멍을 뚫고 임플란트를 심는 방식이다, 전혀 통증도 없고 시술 방법도 간단하다.

또 한 방법으로 브릿지라는 게 있다. 이는 이를 빼 심은 다음, 양쪽 이를 깍아 매다는 형식으로 하는 방법이다. 불편한 건 양쪽 이를 깎아서 하기 때문에 보철물에 치석이 더 잘 낄 수도 있다. 그래서 7년마다 다시 보철물을 해 달아야 한다. 무통 클리닉, 즉 레이저 임플란트는 잇몸뼈가 튼튼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보통 임플란트 환자의 경우, 풍치가 심해 잇몸뼈가 녹아 있는 상태가 많아 뼈를 보충해 준 다음 시술이 가능하다. 보통 인공뼈나 합성뼈를 사용하는데 우선 심을 공간을 확보한 후 뼈를 보충한 다음 드릴로 잇몸뼈를 뚫는다. 그리고 임플란트를 심고 뚜껑을 닫고 잇몸을 꿰맨 다음 가짜 치아를 붙인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임플란트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지인(知人)들에게 전화를 걸어 임플란트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시술 비용과 고통의 강도에 대해서였다.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보험혜택이 안 돼 약값마저 비싸다고 했다. 예금통장을 뒤져 간신히 비용을 마련했다. 튀어나온 앞니가 흉해 하루라도 빨리 시술 받고 싶었다.

임플란트를 전문으로 한다는 치과에서 시술을 받기로 했다. 우선 구강 전체를 찍는 파노라마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치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임플란트 심을 위치와 뼈의 양과 밀도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엑스레이 사진 판독 결과 나는 레이저 임플란트가 아닌 기존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풍치로 잇몸뼈가 녹아 흘러 뼈를 보충해 준 다음 시술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랫니와 달리 윗니라 치료 기간이 더 길었다. 보통 아랫니는 턱뼈가 튼튼해 3-4개월이면 보철물을 올릴 수 있지만 윗니는 뼈가 약해 6개월이 걸린다. 시술 후 중간 중간 레이저를 쪼여주면 뼈가 더 잘 아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앞니는 심미적인 효과를 위해 손이 더 많이 간다고 한다. 입을 벌리면 곧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설명이 끝난 뒤 곧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마취를 한 뒤 30분쯤 지나 또다시 마취를 했다. 강한 집게 같은 걸로 이를 빼는 모양이었다. 잘 빠지지 않는지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으윽. 저절로 신음이 났다. 이가 빠지자 잇몸을 절개하고 다음 수순이 이어졌다. 아마도 인공뼈를 집어넣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자 이번에는 드릴 소리가 났다. 뼈 깊숙이 드릴로 뚫는데 이와 귀가 가까워서인지 그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드릴로 뼈 뚫는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다. 한참을 뚫고 나자 임플란트가 식립되는가 보았다. 나사 같은 게 뼈속으로 들어가더니 뚜껑을 조여 닫는 소리가 났다. 안전을 확인하고 잇몸을 꿰매는 가 보았다. 팽팽한 실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 위에 본을 뜬 가짜 치아가 붙여졌다. 1 시간 여 만에 시술이 끝났다. 앞니 부분이 얼얼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풍치수술보다 훨 안 아팠다. 중간 중간 레이저로 쪼여주기 때문에 출혈도 심하지 않았다. 숙련된 베테랑 의사라 그런지 시술이 순식간에 끝난 것이다.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 간호사가 얼음팩을 주었다. 수술 부위에 대고 찜질을 하라고 했다

"당분간 죽을 드시고 단단한 음식이나 뜨거운 것을 삼가 드세요, 출혈이 심하면 지혈제 드시고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약국으로 갔다. 지혈제와 소염진통제 값이 무려 칠천 원이었다.
"임플란트 하셨나봐요, 보험혜택이 안 돼 약값이 비쌉니다."
"아! 짜증 나."
나는 수술 부위에 얼음팩을 갖다 대며 신경질을 부렸다. 통증이 잠시 정신을 분산시켰다.

밖으로 나오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포장마차였다. 호떡과 떡볶이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먹는 데 대한 욕구가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 온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폭식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픈 이를 악물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무언가 먹고싶은 걸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엄청난 신(神)의 은총이자 배려이다.

나는 아픈 이를 감싸고 포장마차 앞을 지나갔다. 지하도를 건너자 이번에는 커피 전문점과 피자 전문점이 나타났다. 향긋한 커피향과 피자 냄새가 그야말로 죽여줬다. 저절로 발걸음이 가는 걸 나는 억지로 되돌렸다. 붕어빵 장사와 구운 옥수수, 만두와 튀김냄새도 코를 찔렀다.

아아! 세상은 온통 먹을 것 천지였다. "당분간 죽만 드세요." 간호사의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계속 눈앞에 먹을 것이 나타났다. 그러나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통증은 점점 가라앉는데 배에서는 연신 꼬르락 소리가 났다.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 간신히 물에 말아 먹고는 교회로 향했다. 저녁 때 집회가 있었다.



며칠 지났다. 수술한 부위에 붙인 가짜 이빨이 흔들렸다. 부은 잇몸이 가라앉으면서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이야기해 다시 본을 떠 붙였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자꾸만 혀가 그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열흘도 안 됐는데 그만 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빨이 빠지고 난 자리를 거울로 들여다보니 새까만 공간이 흉하게 내 시야를 압박해 왔다.



흉해도 흉해도 그렇게 흉할까.

빠진 구멍 사이로 바람소리가 휙휙 지나가는 거 같았다.

그 와중에 혀가 임플란트 식립을 심어놓은 보철물로 자꾸 가 닿는 것이었다. 차가운 금속성 물질이 혀에 닿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다시 가짜 이를 해붙였는데 실제 크기보다 낮게 했다. 이빨이 부딪쳐서 충격이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 거 같았다.



그후 가끔씩 치과에 들러 레이저 치료를 받고 5개월 보름이 지났다.

이번에는 진짜 이빨 본을 뜨라고 했다. 위생사가 X선 사진을 찍고 나더니 찐뜩 찐득한 초록색 모형물을 이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앙 다물어진 이 사이로 침이 가득 고이는 것 같았다. 한참 후, 모형물을 빼는데 이빨 전체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단단히 박힌 모양이었다.



간신히 뺀 다음 아랫니에도 모형물을 해 본을 떴다. 일주일 후 다시 치과에 갔다. 위생사가 가짜 이빨을 빼고 임플란트를 식립할 공간을 소독했다.

"잇몸이 좀 아플 겁니다. 아프셔도 참으셔야 해요."

다음 순간 이빨을 식립하는 데 잇몸 전체가 금속기구에 의해 짓이겨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위생사가 거울을 보여 주었다. 모양은 그럴 듯하게 나왔는데 양 이빨 사이가 치실이 자유롭게 드나들만큼 벌어져 있었다. 다시 본을 뜨고 나더니 일주일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 후 또다시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뭐가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또다시 X선 사진을 찍더니 본을 떴다.

5일 후 또다시 치과에 갔다. 이번에도 소독을 하고 나더니 다시 임플란트를 식립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더니 잠시 후 괜찮아졌다. 거울을 들여다 보니 원 모양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임플란트 공간을 땜질하고 일어서니 그 흉해 보이던 송곳니가 제 모양을 하고서 웃고 있었다.

워낙 베테랑 의사가 그런지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 끝내고 나니 그간 5개월 여의 기간이 일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웃었다. 친구는 몇 년 전, 나보다 앞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요즘 몸이 너무 피곤해 늙으면 이빨도 빠지고 기운도 달린다더니 몸이 말이 아냐."

친구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야, 나이는 속일 수 없나봐, 나도 몸이 너무 힘들지 뭐니."



end



임플란트

신외숙







지난해 여름 이야기다.

윗 송곳니에서 자주 진물이 나면서 흔들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어느날 앞니가 삐죽히 튀어나와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드라큐라 같았다. 짐작하건데 풍치가 재발한 모양이다.

가슴이 덜덜 떨렸다. 7년 전에 했던 풍치 수술의 공포가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놀란 가슴으로 풍치수술을 했던 대학 병원으로 달려갔다.



입안을 들여다 보고 난 의사가 말했다.

"풍치는 아니고 이 뿌리가 약해져 그런 거니까 임플란트 해야겠습니다. 우선 가짜 이빨 본부터 뜨시고."
"네에 임플란트요?"

순간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 엄청나게 아프다는 임플란트 말인가요?"
"예, 그럼 이렇게 흉하게 튀어나온 이를 그냥 둘 작정이신가요? 빼고서 임플란트 하고 나면 감쪽 같아질 겁니다."
의사는 너무도 태연하게 당연스럽다는 듯 말했다.



8년 전, 대학 병원에서 구강암 정밀검사를 받고 났을 때의 일이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풍치 수술 받으셔야겠습니다. 풍치가 너무 심해요."

"풍치수술이란 게 어떤 건데요?"

"잇몸을 째고 농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받으십시오."

처음에는 수술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었다. 잇몸을 째다니, 농을 제거하다니, 그러나 한시가 급하다 하니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 주일 후 대학 병원에 가 마취 주사를 맞고 수술에 들어갔다. 마취 주사를 잇몸과 얼굴 안쪽에 6-7대는 맞은 것 같다. 얼굴 전체가 굳어지는데 마치 석고상이 된 것 같았다.

30분쯤 지나자 의사가 칼로 잇몸을 째는데 악력(握力)이 느껴졌다. 강한 힘이 잇몸을 누르는데 턱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잇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혀를 적시는데 찝찔했다. 잇몸을 째고 날카로운 금속기구로 이뿌리에 있는 농을 제거하는데 턱 전체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기구가 이뿌리를 건드릴 때마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늘로 잇몸을 봉합하는 모양이었다. 푸욱! 하고 바늘의 깊이가 느껴지면서 팽팽한 실이 얼굴을 스쳤다. 껌 같은 이물질이 잇몸 위에 붙여지고 수술이 끝났다. 수술대에서 내려오는데 지옥을 여러 차례 왕래한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가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이 아팠다. 마취가 풀리면서 또다시 통증이 시작되는데 입을 벌릴 수조차 없었다.

신경질이 나면서 통증이 자꾸만 정신을 분산시켰다. 사랑니를 빼고도 진통제 없이 잘 견딘 나였는데 풍치수술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 끔찍한 수술을 네 번에 걸쳐 받는데 그 부위가 부어 올라 얼굴이 완전 기형으로 변했다. 계속 진통제를 먹는데도 통증이 일 주일이나 이어졌다.


그런데 임플란트라니…….

잇몸을 째고 턱뼈를 드릴로 뚫어 인공이를 심는다는 수술 아닌가. 말만 들어도 끔찍했다. 임플란트 하면 우선 연상되는 게 엄청난 통증과 수술 비용이다. 수술 과정이 워낙 고난도의 기능을 요하는 것이라 그만큼 힘들고 비용도 비싸다. 의료보험 혜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임플란트를 한 여자들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수술을 한 뒤, 3일 밤낮을 누워 지냈다고 한다. 수술 후유증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임플란트도 많이 발전해 레이저 무통 클리닉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단번에 레이저로 구멍을 뚫고 임플란트를 심는 방식이다, 전혀 통증도 없고 시술 방법도 간단하다.

또 한 방법으로 브릿지라는 게 있다. 이는 이를 빼 심은 다음, 양쪽 이를 깍아 매다는 형식으로 하는 방법이다. 불편한 건 양쪽 이를 깎아서 하기 때문에 보철물에 치석이 더 잘 낄 수도 있다. 그래서 7년마다 다시 보철물을 해 달아야 한다. 무통 클리닉, 즉 레이저 임플란트는 잇몸뼈가 튼튼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보통 임플란트 환자의 경우, 풍치가 심해 잇몸뼈가 녹아 있는 상태가 많아 뼈를 보충해 준 다음 시술이 가능하다. 보통 인공뼈나 합성뼈를 사용하는데 우선 심을 공간을 확보한 후 뼈를 보충한 다음 드릴로 잇몸뼈를 뚫는다. 그리고 임플란트를 심고 뚜껑을 닫고 잇몸을 꿰맨 다음 가짜 치아를 붙인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임플란트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지인(知人)들에게 전화를 걸어 임플란트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시술 비용과 고통의 강도에 대해서였다.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보험혜택이 안 돼 약값마저 비싸다고 했다. 예금통장을 뒤져 간신히 비용을 마련했다. 튀어나온 앞니가 흉해 하루라도 빨리 시술 받고 싶었다.

임플란트를 전문으로 한다는 치과에서 시술을 받기로 했다. 우선 구강 전체를 찍는 파노라마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치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임플란트 심을 위치와 뼈의 양과 밀도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엑스레이 사진 판독 결과 나는 레이저 임플란트가 아닌 기존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풍치로 잇몸뼈가 녹아 흘러 뼈를 보충해 준 다음 시술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랫니와 달리 윗니라 치료 기간이 더 길었다. 보통 아랫니는 턱뼈가 튼튼해 3-4개월이면 보철물을 올릴 수 있지만 윗니는 뼈가 약해 6개월이 걸린다. 시술 후 중간 중간 레이저를 쪼여주면 뼈가 더 잘 아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앞니는 심미적인 효과를 위해 손이 더 많이 간다고 한다. 입을 벌리면 곧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설명이 끝난 뒤 곧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마취를 한 뒤 30분쯤 지나 또다시 마취를 했다. 강한 집게 같은 걸로 이를 빼는 모양이었다. 잘 빠지지 않는지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으윽. 저절로 신음이 났다. 이가 빠지자 잇몸을 절개하고 다음 수순이 이어졌다. 아마도 인공뼈를 집어넣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자 이번에는 드릴 소리가 났다. 뼈 깊숙이 드릴로 뚫는데 이와 귀가 가까워서인지 그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드릴로 뼈 뚫는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다. 한참을 뚫고 나자 임플란트가 식립되는가 보았다. 나사 같은 게 뼈속으로 들어가더니 뚜껑을 조여 닫는 소리가 났다. 안전을 확인하고 잇몸을 꿰매는 가 보았다. 팽팽한 실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 위에 본을 뜬 가짜 치아가 붙여졌다. 1 시간 여 만에 시술이 끝났다. 앞니 부분이 얼얼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풍치수술보다 훨 안 아팠다. 중간 중간 레이저로 쪼여주기 때문에 출혈도 심하지 않았다. 숙련된 베테랑 의사라 그런지 시술이 순식간에 끝난 것이다.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 간호사가 얼음팩을 주었다. 수술 부위에 대고 찜질을 하라고 했다

"당분간 죽을 드시고 단단한 음식이나 뜨거운 것을 삼가 드세요, 출혈이 심하면 지혈제 드시고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약국으로 갔다. 지혈제와 소염진통제 값이 무려 칠천 원이었다.
"임플란트 하셨나봐요, 보험혜택이 안 돼 약값이 비쌉니다."
"아! 짜증 나."
나는 수술 부위에 얼음팩을 갖다 대며 신경질을 부렸다. 통증이 잠시 정신을 분산시켰다.

밖으로 나오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포장마차였다. 호떡과 떡볶이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먹는 데 대한 욕구가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 온 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폭식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픈 이를 악물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무언가 먹고싶은 걸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엄청난 신(神)의 은총이자 배려이다.

나는 아픈 이를 감싸고 포장마차 앞을 지나갔다. 지하도를 건너자 이번에는 커피 전문점과 피자 전문점이 나타났다. 향긋한 커피향과 피자 냄새가 그야말로 죽여줬다. 저절로 발걸음이 가는 걸 나는 억지로 되돌렸다. 붕어빵 장사와 구운 옥수수, 만두와 튀김냄새도 코를 찔렀다.

아아! 세상은 온통 먹을 것 천지였다. "당분간 죽만 드세요." 간호사의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계속 눈앞에 먹을 것이 나타났다. 그러나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통증은 점점 가라앉는데 배에서는 연신 꼬르락 소리가 났다.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 간신히 물에 말아 먹고는 교회로 향했다. 저녁 때 집회가 있었다.



며칠 지났다. 수술한 부위에 붙인 가짜 이빨이 흔들렸다. 부은 잇몸이 가라앉으면서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이야기해 다시 본을 떠 붙였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자꾸만 혀가 그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열흘도 안 됐는데 그만 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빨이 빠지고 난 자리를 거울로 들여다보니 새까만 공간이 흉하게 내 시야를 압박해 왔다.



흉해도 흉해도 그렇게 흉할까.

빠진 구멍 사이로 바람소리가 휙휙 지나가는 거 같았다.

그 와중에 혀가 임플란트 식립을 심어놓은 보철물로 자꾸 가 닿는 것이었다. 차가운 금속성 물질이 혀에 닿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다시 가짜 이를 해붙였는데 실제 크기보다 낮게 했다. 이빨이 부딪쳐서 충격이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 거 같았다.



그후 가끔씩 치과에 들러 레이저 치료를 받고 5개월 보름이 지났다.

이번에는 진짜 이빨 본을 뜨라고 했다. 위생사가 X선 사진을 찍고 나더니 찐뜩 찐득한 초록색 모형물을 이 사이에 끼워 넣었다.

앙 다물어진 이 사이로 침이 가득 고이는 것 같았다. 한참 후, 모형물을 빼는데 이빨 전체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단단히 박힌 모양이었다.



간신히 뺀 다음 아랫니에도 모형물을 해 본을 떴다. 일주일 후 다시 치과에 갔다. 위생사가 가짜 이빨을 빼고 임플란트를 식립할 공간을 소독했다.

"잇몸이 좀 아플 겁니다. 아프셔도 참으셔야 해요."

다음 순간 이빨을 식립하는 데 잇몸 전체가 금속기구에 의해 짓이겨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위생사가 거울을 보여 주었다. 모양은 그럴 듯하게 나왔는데 양 이빨 사이가 치실이 자유롭게 드나들만큼 벌어져 있었다. 다시 본을 뜨고 나더니 일주일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 후 또다시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뭐가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또다시 X선 사진을 찍더니 본을 떴다.

5일 후 또다시 치과에 갔다. 이번에도 소독을 하고 나더니 다시 임플란트를 식립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더니 잠시 후 괜찮아졌다. 거울을 들여다 보니 원 모양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임플란트 공간을 땜질하고 일어서니 그 흉해 보이던 송곳니가 제 모양을 하고서 웃고 있었다.

워낙 베테랑 의사가 그런지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 끝내고 나니 그간 5개월 여의 기간이 일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웃었다. 친구는 몇 년 전, 나보다 앞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요즘 몸이 너무 피곤해 늙으면 이빨도 빠지고 기운도 달린다더니 몸이 말이 아냐."

친구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야, 나이는 속일 수 없나봐, 나도 몸이 너무 힘들지 뭐니."



end
2009-08-14
10:00:53



박인과
감사합니다. ^^ 2009-08-26
00:36:27

 


윤정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겁이나서 임플란트는 하고 싶지 않군요. 나는 겁이많고 엄살이 심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냥 팥죽할멈으로 살래요.^^
2009-09-08
17:28:26



신외숙
청계산

신외숙



강남역을 지나 양재동에 이르는 골목은 평상시에도 혼잡하기 이를 데없다.

언제나 꽉꽉 막히기 마련인데 복잡한 차량과 인파와 공해마저 가세해 짜증을 더하게 한다. 하지만 양재동 서초문화회관을 벗어나 내곡동 쯤에 이르면 달라진다. 어느덧 시원한 공기가 초록 풍경과 함께 다가오며 마음이 탁 트인다. 오른쪽으로 청계산 팻말이 보인다.



그 도로에 들어서면 새로운 진풍경이 펼쳐진다. 꽃시장을 지나고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조금 전에 보았던 도심의 찌든 모습과는 달리 한적한 시골길이다. 한티 센타를 지나 두번째 정류장에 내리면 삼림욕장이 나타난다. 푸른 숲향기와 함께 안온함 느낌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보름 전, 친구와 함께 삼림욕장에 다녀왔다. 이전에 청계산 원터골에 다녀온 터라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삼림욕장으로 정한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오솔길이 보였다. 사람들이 발길이 드믄 걸로 보아 처음에는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모래 흙길을 지나 한참 걸어가니 굴다리가 보였다. 굴다리 위로 고속버스가 쌩쌩 달리고 있었다.



왼쪽으로 삼림(森林)이 오른쪽으로는 밭이 보였다. 넓게 펼쳐진 비닐하우스에 자동차와 인가가 보였다. 길가 한쪽에 널어놓은 말린 나물과 밭에는 옥수수와 호박 가지 고추가 한창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초록 수풀 뒤로 찌를 듯한 빌딩이 보였다. 극과 극의 대조였다. 방금 전, 빌딩 숲을 지났는데 초록 수풀과 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빨간 고추가 매달린 밭을 지나며 말했다.

"누가 저 고추 다 따가면 어떡하니?"

"설마……."

"누가 알아? 밤에 와서 몰래 다 따가면 헛농사 짓는 거잖아."

매사에 의심이 많은 나는 밭을 지나면서도 걱정이었다.



조금 더 지나자 본격적으로 숲이 나타났다. 좁은 길을 자동차가 간신히 비켜 올라가는데 대추나무가 보였다. 아직 연둣빛이지만 꽤 영근 모습이었다. 휘어진 가지를 붙잡고 대추를 따 손에 넣었다.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가 대추나무여서 주인이 없는 것 같았다.



밭을 지나 산쪽으로 가다보니 개나리골 샘터가 보였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에 담는 산책객들이 보였다.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으니 음용하지 말라는 문구에도, 사람들이 커다란 물통에 물을 연신담고 있었다. 맞은편에도 샘이 있는데 그곳은 발을 씻는 곳이었다. 물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는데 거머리 같은 것이 보였다.



"엇! 이게 뭐야? 웬 벌레지?"

놀라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이 물은 발 씻는 거라니까."



개나리골 샘터 위로 산책로가 보였다. '맨발로 걷는 길"이라고 써진 팻말이 보였다. 고운 황토가 계단 위로 펼쳐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디뎌 보았는데 고운 흙길 위로 날카로운 돌조각이 밟혔다. 할 수 없이 신발을 신고 걸었다. 대낮임에도 나무 숲에 가려 하늘이 어두웠다. 도토리 나무와 잣나무가 하늘을 치받고 있었다.



큰 통나무로 만든 집 모양도 보였다. 계속 황토흙길이 이어졌다.

'이곳부터는 맨발로 걷는 길' 팻말이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했다. 가끔씩 등산객들이 베낭을 메고 지나갔다. 얕으막한 산길이라 걷는 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백련산보다 훨씬 지형이 낮았다. 고운 흙길을 맨발로 걷다 도로 내려왔다. 맨발에 와 닿는 흙의 감촉이 얼마나 좋던지…… 얼마만에 밟아보는 흙길이던가.



다시 개나리골 샘터로 내려와 발을 씻었다. 친구는 언제 벌레에 물렸는지 아프다고 야단이었다. 샘물로 씻고 나무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다 내려왔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다음번엔 옛골로 가자는 약속과 함께.



일주일 후 우리는 양재동에서 똑같은 버스를 타고 옛골로 갔다. 분명히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정했는데 몇번이나 착오가 생겼다. 친구가 옛골을 원터골로 잘못 알고 가는 바람에 중간에 착오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옛골에 도착해 보니 음식점과 상가만 보일 뿐 산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청계산 옛골이라 했는데, 어디로 가야 산이 나오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산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친구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산이 안 보여 잘못 왔나봐 도로 산림욕장으로 가자."

"그래도 찾아보면 길이 나올 거야."



때마침 폭양이 내리쪼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랫쪽으로 가다보면 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했다. 구멍가게를 지나 고속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건너자 개천이 보였다. 그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옛골이라 했다. 개천길을 따라 가는데 음식점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이 사이마다 자동차들이 진을 치고 발걸음을 방해했다.



큰 사찰도 보였고 다리를 건너자 비로소 산길이 나타났다. 울창한 숲속이 개울물과 함께 펼쳐지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등산객들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개울물가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도토리 열매가 여기 저기 딍굴고 있었다.



얕은 물가에 송사리 떼가 보였다.

어디서 왔을까. 저렇게 얕은 물가에 살다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데 산새가 푸드득 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울창한 나무 숲과 황토 흙길, 산길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 산새와 나무 열매도 보였다.



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도 보였다. 나무 밑둥이 반이나 잘려져 나가 옆으로 누워버린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옆으로 비스듬이 누워 간신히 해바라기를 하는 나무도 있었다. 바위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마치 강원도 심심산골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차 타고 멀리 갈 거 없어, 이렇게 서울에서 지척인 곳에도 숲과 물가가 있잖아, 얼마나 좋니?"



우리는 자연의 고마움을 서울, 그것도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강남의 지척에서 즐긴다는 사실에 내내 감격하며 하행 길에 접어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밭 구경을 하면서 지나는데 무인 판매대가 보였다. 인근 밭에서 딴 호박과 가지, 빨간 무우가 가격표와 함께 놓여 있었다. 돈통을 바라보는데 왠지 불안했다. 주인도 없는데 누가 들고 가버리면 어떡하지. 주변에 지나는 등산객들도 많은데, 나는 또다시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친구와 나는 무인 판매대에서 빨간 무우와 고추를 사서 나누어 가졌다. 3,000원을 돈통에 집어넣으며 이렇게 사람들을 믿어주는 주인이 있다는 사실에 감읍했다.(?)

"그런데 고추랑 가지가 시든 것 같다."



우리는 개울물가를 걸으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다 산밤을 샀다. 주인은 청계산에서 막 딴 거라고 우겼지만 색깔을 보니 아닌 것 같았다. 벌써 밤이 열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밤이 싱싱해 보여 두 되에 6,000원 하는 걸 마수라고 4,000원에 사 나누어 가졌다.



푸른 숲과 물가는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평안과 함께 옛 정취를 생각나게 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공해와 세상 근심 걱정에 찌든 마음, 병든 마음을 치유해 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그 효과를 알기에 나는 수시로 도심을 떠나 푸른 숲을 대하고 싶은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쉼을 누리다 보면 굳은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우울도 없어진다.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대의 선물이자 혜택이다. 산행을 마친 나는 기도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2009-09-30
09:53:48



신외숙
(단편) 추억이라는 이름
신외숙

옛길이 보였다.

편의점 뒤로 난 골목길에 분식점과 미용실, 오밀조밀한 주택가가 미로처럼 형성돼 있었다. 그 좁다란 골목길을 마을버스가 곡예를 하듯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고시촌과 세탁소, 문구점 앞으로 오토바이가 찢어지는 파열음을 내고 지나갔다. 그 앞 사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종합대학이 그 동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전에는 한강변이 보이는 도로에만 버스가 다녔는데 지금은 대학입구까지 다닌다. 거리도 옛날보다 많이 화려해졌다. 전에는 포장마차와 리어카 행상이 많았는데 지금은 샹들리에 불빛이 환한 고급 음식점과 수제품 옷가게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대학병원이 웅장한 빌딩으로 들어섰다. 병원은 유리로 만든 공예품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위락시설처럼 꾸며져 고급스럽기 짝이 없다. 맹추위가 몰아닥친 거리에 겨울 불빛이 흐른다. 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타고 시간을 거꾸로 회전시키고 있다.

예술대학으로 유명한 J대학은 경기도에 있는 모 소도시에 예술대학의 본거지를 옮겨놓았다. 나와 남동생은 그 종합대학을 나와 그곳에서 오 리쯤 떨어진 곳에 둥지를 틀었다. 나는 모교의 부설 중학교 교사로 4년간 근무했고 남동생은 ROTC장교로 군대를 다녀온 뒤 국내 굴지 재벌그룹에 몸담았다.

한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여의도로 흘러가고, 죽음의 최고 명예 장소로 꼽히던 국립현충원은 이십 년 전부터 대전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검은 휘장과 애국을 알리는 글귀가 현충원 담벼락을 메우고 강남으로 가는 요충지 역할을 하면서 항상 러시아워를 방불케 한다.

그 길을 지나 강남에 있는 직장에서 십 년을 근무했다.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나는 철저한 생활인으로 살았다. 살면서 한반도 미래니 소망이니 하는 단어를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은 냉정하고 나이는 성과라는 단어를 요구했다.

흑석동 거리에 개나리와 진달래, 단풍과 은행잎이 수없이 피고 질 때마다 감성은 시들어 무감각으로 변해갔다. 어느날 나이 사십이 넘어 명동 길을 걷는데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추억이었다.
한때 유명했던 '추억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연극제목이 생각난다. 동숭동 거리를 장악하다시피 했던 꽤 유명했던 연극이었다. 나는 그때 연극광이었음에도 그 연극을 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세월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했는데 통장은 텅텅 비었고 정신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빈곤한 정신은 한때 우울증을 촉발시켰다. 원래 내 정신은 지고는 못사는 경쟁의식이 팽배했다. 매사에 승리냐 패배냐에 집착했고 다툼이 일 때마다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죽기살기로 싸웠다. 처음에는 그것이 정의감의 발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대신 울분이 가슴 한복판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사람들과의 다툼이 많아졌다.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도 죽기살기로 싸웠고 한번 틀어지면 다시는 상종하지 않았다. 싸움판에 나선 전투사처럼 거의 매일 싸웠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치 싸우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어느날인가부터 나는 결단을 미루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서히 기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경쟁의식에 시달리느라 마음의 피멍이 든 때문이다. 더 이상 경쟁을 치러낼 자신도 없었고 만사가 귀찮았다. 현실도피를 택한 내가 내린 처방은 여행이었다. 여행지로 남해안 일대와 동해 끝자락을 주로 다녔다. 다혈질 성격 탓에 자가용 운전을 포기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데 돈이 배 이상 더 들어갔다. 까짓 한번뿐인 인생, 죽으면 쓰지도 못할 것 다 쓰고 죽어버리자. 숙소는 호텔을 이용했고 식사는 유명한 업소만 찾아 다녔다.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방종의 세월 동안 나는 감정이 점점 타락해 갔다.

신(神)의 방관 속에 나는 무기력의 종이 되어 갔다. 낯선 도시 낯선 고장을 떠돌면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람 꼴이 우스웠다.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서 지식적인 수준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젠 누가 학원 강사로 와 달라고 해도 못 갈 판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끊임없이 자아정체성에 시달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방종의 끝은 무엇일까.

내 인생의 역마차는 어디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낯선 길, 그것도 길고도 어두운 길을 가면서 나는 침잠의 늪에 빠져들었다. 방랑은 쉼이 없었다. 평강이나 희열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상실된 자신감을 되찾고 진정한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아니 나는 더 이상 보헤미안을 포기하고 싶었다.

무언가에 단단히 얽매이고 싶은 욕구에 긴장이 높아졌다. 문득 고향이 그리웠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초중고 대학을 모조리 한 동리에서 나왔다. 살면서 한강 다리를 건너본 적이 소싯적에 몇 번이나 있었던가. 방랑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한강

아래쪽에서만 산 것이다. 조급증이 인 나는 당장 서울로 돌아왔다. 방랑의 후유증도 접지 못한 채. 돌아오고 나서도 엄청난 후회와 자책감에 시달렸다. 잃어버린 세월을 두고서 나이에 대한 공박이 이루어졌다. 20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이가 40을 넘어서고 있었다. 동생은 흑석동에 살다 아이 교육을 핑계로 강남의 역삼동으로 이사 가버리고 없었다.

나는 흑석동에 동그마니 혼자 남겨졌다. 세든 사람을 내보내고 집수리를 시작했다.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는데 묘한 미소를 짓더니 엄청난 가격을 요구했다. 그는 입을 쩍쩍 벌리며 놀라는 내게 말했다.

"달나라에서 살다 오셨나 뭘 그리 놀라는 거요?"

"뭐요?"

동생을 불러 의논하자고 했더니 바쁘다며 신경질을 냈다. 올케는 조카 학교에 일일교사로 초빙 받았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집수리를 포기하고 그냥 눌러 앉아 살기로 했다. 그리고 날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찾았다. 초등학교는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30년 전만 해도 사립학교가 많지 않았었다.

일반 초등학교는 모두 공립인데 내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로 감색 교복을 착용했었다. 감색 교복에 베레모 모자에다 까만 구두. 학교 마크가 찍힌 가방에다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나는 집이 가까워 그냥 걸어 다녔지만 상도동이나 방배동에 사는 아이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런 우리들을 부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못 먹어 빼빼 마른 아이들은 얼굴에 버짐이 가득했다. 손목이 때에 절어 흐르는 코를 연신 닦아내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우리가 스쿨버스를 타고 소풍을 가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눈이 높은 나는 그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하대했다.

가진 자로서의 특권의식을 발휘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골목에서 놀 때도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상대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매일 새옷을 사내라고 떼를 썼다. 유행하는 옷을 입지 않으면 몸살이 날 정도였다. 피아노는 물론 무용과 태권도 심지어 특수과외까지 받으러 다녔다. 절대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었으니까.

엄마는 이런 나를 기특하게 생각해 내가 원하는 거면 무조건 다 해주었다.

"어쩌면 저렇게 나 어렸을 때와 똑같은지."

"엄마 나 이담에 커서 여자 대통령 될 거야."

"그래? 우리 딸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말고."

욕심이 커 열심히 공부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고 뛰는 아이들이 막판에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입만 열면 일류대학, 그것도 꼭 이화여대를 노랠 불렀었다. 그러나 이대는커녕 웬만한 대학은 명함도 못 낼 지경이 되었다.
욕심이 많아 지고는 못 사는 나는 점점 지쳐갔다.

"얘야, 난 우리 딸이 서울에 있는 어떤 대학이라도 좋으니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겉으론 그렇게 말했지만 그 속내를 모를 내가 아니었다. 소위 일류대에 보내 동네 방네 일가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으면서. 결국 나는 동네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했다는 엎드리면 코 닿는 거리였다. 동생 역시 가족들의 열렬한 성원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정경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면서 여학생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렸다.

동생은 요샛말로 얼짱 몸짱이었다. 동네에서는 물론 어쩌다 캠퍼스에서 한번 만난여학생들까지 집으로 들이닥쳐 우리집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군대 가는 날은 동네에서 난리가 났다. 온통 여학생들이 몰려나와 눈물바람을 뿌려대는 통에 구경거리가 따로 없었다.

"차라리 아드님을 영화배우로 내보내슈."

동네 어른들은 엄마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때 우리가 사는 골목길 끝에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하꼬방에 사는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한눈에 보아도 모자란 티가 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반편이라 불렀다. 헤벌래 하며 웃는 폼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천치 수준이었다. 체구는 조그마한데 그런 힘이 나는지 아무리 힘든 일도 척척 해냈다.

그들 부부에게 외딸이 있었다. 한쪽 눈이 짜브러지고 돼지처럼 입 부분이 툭 튀어나와 아이들은 그애만 보면 돼지 입이라 놀렸었다. 그애도 부모를 닮아 반편이었다. 반편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지능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그들은 겨우 까막눈 신세를 면했고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자 제일 먼저 퇴출당했다.

그들이 동네에서 쫓겨나던 날, 나는 동네 어귀에 서서 똑똑히 보았다. 낮은 자의 설움을. 못 배우고 못살던 그들은 결국 그렇게 쫓겨 나 봉천동의 산동네로 이사가버렸다. 그들의 외딸 봉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입을 헤 벌리며 웃었다. 찢어진 치맛단을 붙잡고 깡충깡충 뜀을 뛰면서. 봉자는 동네 사내아이들한테도 좋은 장난감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봉자의 치마를 들추고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발로 걷어찼다.


누가 말했던가.
동심천국이라고,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동심은 배려 자체가 없기에 오히려 악이 더 자주 분출된다. 왕따와 집단 폭행이 가장 심한 곳이 초등학교라는 분석도 있다. 때론 여자 아이들까지 가세해 봉자는 동네북이 되어 얻어맞았다. 그중에는 어리석은 나도 끼어 있었다. 봉자 부모는 딸을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와 싫은 소리를 하거나 눈 한번 흘기지 않았다.

봉자.
나는 그 이름을 방랑의 세월동안 한번도 잊지 않았다. 이상하게 봉자라는 이름이 생각 끝에 꼭 머물러 있었다. 슬픔과 후회라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그녀는 지금쯤 어디서 살고 있을까. 사람 구실 할 수 있을까 라며 그녀를 향한 어른들의 걱정도 떠오른다. 험한 세상, 그녀는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갈까. 별별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너무 순해 항거조차 할 줄 모르는 그녀의 여린 심성을 두고서,

난 지금 마을버스가 지나는 골목길에 서 있다. 매운 겨울바람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다. 대학병원 전광판에선 모두를 환자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열시가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스팀이 나오는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습이 유리문 밖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저 병원은 행인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병원 밖 거리는 수많은 꼬마전구로 장식된 전자랜드 같다. 포장마차와 옷가게 노래방 음식점들 사이마다 세월이 흐르고 있다. 차도와 인도는 한뼘 차이도 안 난다. 택시와 버스가 무단으로 흐르면서 동리를 한 평면처럼 압축시키고 있다. 입체감 없이 거리는 손바닥만큼 좁아 보인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목을 휘감고 있다.

행인들마다 옷깃을 여미며 추워를 연발한다.

"전 춥고 배고픈 화가입니다."

언젠가 행사에서 만났던 화가가 자기 소개를 하면서 한 말이다. 추상화를 주로 그린다는 그는 말끝에 명언을 했다.

"추상에는 리얼리티가 없다."

대학 시절 소설 평론을 하면서 리얼리티에 대해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새빨간 거짓말의 대명사인 소설에 리얼리티가 살지 않으면 그건 그야말로 허구일 뿐이다. 역사소설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었다. 어디까지 사실로 볼 것인가. 작가의 관념으로 역사를 마구 파헤치고 왜곡시켜도 무방한 것인가. 한때 작가가 되겠다고 나서는 나를 두고 주변사람들은 말했었다.

왜 굳이 춥고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포기했었다. 허영기로 똘똘 뭉친 내 정신은 춥고 배고픈 것과는 영 무관했기 때문이다. 방랑의 세월을 접고 나서 후유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동안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꽤 철학적인 논조로 썼는데 나중에 탈고하고 보니 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핑계는 자기 위안도 되지 않는다. 또다른 혐오감을 뒤집어 쓸 뿐이다. 책임감이라는 올가미를 씌워야 한다. 거기에는 능력이란 단어가 추가된다. 물론 성공이란 단어도 뒤따른다.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다. 나는 성공이란 단어를 놓고 무진장 고민에 빠졌었다. 그때 나는 벌써 알고 있었다. 인생은 성공을 위해 태어났고 성공을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어떡케 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지 매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아빠, 난 이담에 커서 무엇으로 성공하지."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한 다음 니 소질에 맞는 걸로 결정하자."

학교에서 빈 노트에다 바둑판 그림을 그려놓고 오목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옆에 앉은 남자 짝과 했는데 번번이 지는 것이었다. 한번쯤 져주어도 되련만 친구는 눈치도 없이 매번 이겼다. 화가 난 나는 남자 친구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때렸다. 화가난 친구는 주먹으로 나를 때렸고 싸움은 엄마 아빠들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난 지고는 못 살아."

내 말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암 그래야지 그래야 말고."

나는 편의점 앞을 지나 대학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헤! 까꿍."

눈이 움푹 들어가고 앞니가 튀어나온 여자가 산발한 머리를 하고서 웃고 있다. 회색 외투를 아무렇게나 휘둘러 입고 맨발이다. 동상에 걸렸는지 발등이 푸르등등하다. 놀라는 내 눈빛을 보자 재미있는지 여자는 한손을 내저으며 근처의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들어간다.

편의점 안으로 발걸음을 디밀자 따듯한 기운이 얼굴을 덮친다.

"어서 오십시오."

젊은 남녀 직원이 반가운 미소로 맞는다. 어디로 숨었는지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좁은 공간에서 숨을 곳도 없을 텐데. 으핫핫핫핫……. 어디선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뒤쪽으로 시선이 집중된다. 여자가 컵라면 코너에서 수저로 햇반을 퍼먹고 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을 헤벌쩍 벌리며.

나는 쫓기듯 편의점을 나와 길거리를 걷고 있다. 밤 공기가 겨울바람과 함께 발목을 잡아챈다. 수많은 쇼윈도우의 글자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현실이라는 압박감과 함께. 방황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글자가 이 순간 무언가 결단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도는 갑자기 횡단보도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난무하다.

길 끝에 성처럼 우뚝 솟은 건물이 보인다.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에는 길과 건물이 작은 평면처럼 좁아지고 있다. 대학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옛날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차로(車路)가 형성돼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궁궐을 연상케하던 정문이 사라지고 각종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각종 국가고시에 합격해 명예를 높였다는 재학생들의 이름이 사람들의 시선을 당기고 있다.

자세히 보니 본관으로 향하는 계단이 세월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세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찬 겨울바람이 내 목을 휘감고 나더니 말했다. 너가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이냐고.
추위에 쫓겨 나는 허겁지겁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혹시 민혜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내 이름인가. 나는 너무도 반가워 주인공의 얼굴을 쳐다본다. 얼굴이 해맑은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잘생긴 미남자였다. 순간 나는 영화 촬영하는 줄 알았다. 아님 운명의 장난이 시작되는 드라마의 한 부분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흰 가운을 입고 있다. 흰 가운 중간에 파란 글씨로 이름이 보인다. 정형외과 전문의 최문기.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본다.

"여긴 웬일이야? 어디 아파."

남자가 반말을 하고 있다,.

"나 알아요?"

"알지 민혜윤, 내 초등학교 동창, 내 이름 기억하니."

"명찰에 나와 있네, 최문기라고."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왔다.

"나, 이 병원 닥터야, 넌 지금 뭐하니?"

말투가 너 백수지? 하고 조롱의 의미를 달고 있었다.

"난 난……."

"너 백수 맞지?"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그제서야 내 신분이 땅에 추락한 사실을 알았다. 망할 자식. 겨우 하꼬방에 살면서 내게 쥐어터지던 녀석이…….

녀석이 내게 꼬집히고 멍자국이 든 채로 집에 가자 야단이 난 모양이었다. 녀석의 부모님이 수소문 끝에 우리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한강변으로 통하는 하꼬방에 간신히 몸이나 붙이고 살던 공사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잡역부였다. 그의 어머니는 편물공장에서 스웨터를 짜는 공장 근로자였다. 그래도 교육열은 그 누구보다 높아 외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내게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네가 혜윤이니? 쬐그만 계집애가 왜 그리 드세, 사내 얼굴에 이 멍 자국 좀 봐라, 얼마나 꼬집었던지 세상에……."

그러자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나오며 말했다.

"누구야? 내 자식 야단치는 게."

엄마의 목소리에 대문간을 들어서던 아버지가 토끼눈을 뜨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 글쎄 계집애가 우리 하나뿐인 귀한 아들래미한테 생채기를 냈지 뭐예요?"

"뭐? 계집애?"

엄마 아빠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우리 대통령감 딸한테 뭐어 계집애?"

아무튼 그날 엄청 티격태격 싸우며 자칫하면 동네 싸움으로 번질 뻔한 걸 마실 온 영희 엄마의 중재로 간신히 마무리 됐다. 그들은 막노동을 하면서도 오직 아들 하나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며 사립학교에 보냈던 것이다. 그후 최문기는 한강 너머에 있는 중학교를 나와 서대문 쪽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억세게 운이 좋은 탓에 의대에 진학 마침 부모가 소원하던 대로 의사 선생님이 된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어릴 때 못살던 게 한이 돼 돈이 많은 집안의 외동딸과 결혼했다고 한다. 오직 재산 하나에 눈이 멀어 인물도 학벌도 보지 않고서.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장인이 수전노도 보통 수전노가 아니어서 재산에는 손 한번 대보지 못했단다. 그는 월급쟁이 의사가 되어 저 혼자 잘난 체하며 사는 것이다.

이상이 내가 그에 대해 얻어들은 지식이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날 나는 최문기와 또래의 악동들과 함께 강북에 있는 미아리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어른들이 술만 마시면 신나게 불어제치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데 우리들은 너무도 신나 야호!를 연발했다. 버스가 용산을 지나고 남대문을 지날 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버스가 혜화동을 지날 때는 함께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도 아무도 우릴 향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야단 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기가 셌고 천하무적이었다. 버스에 내려서는 떡볶이 오뎅, 아이스케키 등을 사먹었다.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을 시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먹기도 했다. 레파토리는 당시 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던 "나 어떡해"였다.

우리는 대학생 오빠들처럼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고 가수 흉내를 내며 불렀다. 가수 이은하가 불렀던 밤차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던 최문기가 생각난다. 최문기는 "멀리 기적이 우네 쿵짝 쿵짝"하며 손으로 연신 하늘을 찔러댔다. 당시 아버지가 중앙정보부에 다니던 경숙이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요기(妖氣)를 부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우리에겐 거침이 없었다.

미아리에서 군것질을 실컷 한 우리들은 정릉으로 놀러갔다. 겁도 없었다. 길을 잃어버리면 택시를 집어 탈 작정이었다. 미로처럼 형성된 점집들 사이를 지나 정릉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멀리 국민대가 보였다. 당시 정릉도 변두리에다 하꼬방촌이었다. 우거진 숲 사이로 시냇물이 그림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난 이 담에 커서 여자 대통령이 될 거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난 커서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될 거야."

최문기가 말했다. '돈도 없으면서 피이'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난 커서 심수봉 같은 가수가 될 테야."

경숙이가 손으로 마이크 모양을 내더니 노래하는 흉내를 냈다.

"난 이담에 잘생기고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할 테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는 결혼만 잘 하면 왕땡이랬어."

그러자 우리는 모두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러면 여자 대통령은 어떡하고."

"그건 그건 그러니까."

내가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최문기가 말했다.

"여자 대통령 말고 영부인하면 되겠다."

"난 이담에 목사님이 될 거야, 우리 엄마가 그러랬어."

형철이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야! 못난이 형철이가 목사가 된대요, 목사."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숲속에서 놀다가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갈일 큰일이었다. 간신히 도로까지 나왔는데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경숙이는 울상이었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우릴 데리러 오라고 할까?"

"그러다 말도 없이 놀러 갔다고 혼나면 어떡해."

"그래 맞어, 우리 택시 타고 집에 갈까."

"너 돈 있니?"

"돈 모아서 타면 되지, 너희들 돈 가진 것 다 내나봐."

우리는 가진 돈을 털어 택시비를 하기로 했다. 그때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와! 소리를 지르며 버스 위로 뛰어 올라갔다. 버스 안에서도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신나게 떠들고 노래했다.

"난 인디아나 존스를 만든 스필버그 같은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 테야."

경숙이는 또 장래희망이 바뀌었다.

"그래서 리챠드 기어 같은 유명한 영화배우를 만나 결혼할 테야."

우리는 또다시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도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버스 창 밖으로 스치는 무리들이 있었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데모대의 일행이었다. 그들은 머리에 검은 띠를 두르고 무언가 열심히 외쳐대고 있었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전경들이 그들 주위를 삥 둘러쌌다.

이어 피융! 하고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분수처럼 터지던 최루탄을 피해 대학생들이 상가 골목으로 뛰어 갔다. 버스는 성균대 앞을 지나 창경궁을 향해 엑셀을 밟고 있었다.

"아빠 아빠한테 말해서 나 데리러 오라고 할 테야."

경숙이는 또 아빠 타령을 했다. 대학생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화염병에 불을 부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불꽃이 빨갛게 타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아스팔트는 불바다로 변했다.

"엄마 엄마 무서워."

우리들은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집에서 얼마나 난리가 났을까. 아마도 경찰서에 연락하고 사방 팔방으로 찾으러 다니느라 야단이 났을 것이다. 버스가 간신히 창경궁 앞을 지나 종로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더 많은 데모꾼의 행렬이 있었다.

"진짜 큰일났다. 어쩐다니?"

"할 수 없지 뭐,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저렇게 데모하는 것 보면 나라에서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가봐."

"아냐,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데모하는 놈들은 모두 빨갱이랬어."

경숙이는 눈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서로 수근대며 말했다.

"경숙이 아빠는 뭐하는 분이라니?"

"간첩 잡는 형사래."


그러자 분위기가 싸악 바뀌었다. 그때 우리 눈앞에 현수막이 등장했다.
군부독재 타도.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나라. 민주화 결사항쟁.

대학생들은 용감했다. 와! 함성을 지르며 전경 버스를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 버스가 남영동을 지나 한강다리를 건넜다. 그제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밖을 내다보니 깜깜했다. 밤늦게 어딜 쏘다니다 왔느냐고 야단맞을 게 뻔했다. 그래도 우린 천하무적 악동들이었다. 아무리 야단쳐도 절대로 기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비계에 닿았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엄마, 아빠."

언제부터였을까. 엄마 아빠들이 버스정류장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들 와라, 어디들 갔다 오느라 이렇게 늦은 거냐?"

아빠들은 자식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좀 일찍들 다녀라, 부모님들 걱정하시지 않니?'

엄마들은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린 건데?"

"한 시간도 넘었어, 어서 가자 밥은 먹었니?"

"응 낮에 자장면 사 먹었어."

"뭐? 자장면?"

"응, 엄마 나 배고파."

"그래 얼른 집에 가 밥 먹자."

다른 엄마 아빠들은 나왔는데 유독 최문기의 부모만 보이지 않았다. 최문기는 울상이었다.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데 불쌍할 정도였다.

"야! 최문기."

우리는 최문기를 향해 용용 죽겠지를 했다. 최문기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런 문기 엄마 아빠는 아직 일이 안 끝나신 모양이구나, 문기야 우리집에 가서 밥 먹자."


엄마가 문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뿌리치고 거절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우리집 앞에 이르렀는데 문기가 내 손목을 잡더니 은근히 말했다.

"너 여자 대통령 되고 싶다고 했지, 그 대통령 내가 할 테니까 넌 그냥 영부인 해."


"뭐라구?"

나는 손목을 홱 뿌리치며 말했다.

"싫어 싫단 말야."


"무엇 때문에 그러니, 둘이 싸웠니?"

엄마의 물음에 최문기는 딴소리를 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방에서 문기와 나는 겸상을 했다. 밥상에는 계란프라이와 소고기 장조림, 셀러드와 멸치볶음이 있었다. 밥상을 받자 문기의 눈빛이 휘둥그래졌다.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있는 대로 다 집어먹었다. 이 모양을 보고 있던 엄마가 말했다.

"문기가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구나, 밥 더 줄까?"

"네 아줌마."

문기는 밥 한공기를 또 뚝딱 해치웠다.

"아줌마, 밥 너무 너무 맛있어요."

볼따구니가 터지도록 밥을 쑤셔 넣으면서 문기는 말했다. 다 먹고 나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아줌마, 나 이담에 커서 혜윤이한테 장가들어도 돼요?"

"뭐야?"

그 말에 우리는 모두 배를 쥐고 웃었다. 문기의 부모는 오직 외아들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막노동 현장과 편물공장에서 밤늦도록 일하고 있었다. 그 이후 어쩐 일인지 문기는 나만 보면 슬금슬금 피했다.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었다고 혼이 난 모양이었다. 이후 문기의 가족은 동리에서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문기가 다니는 중학교 근처로 이사갔다고 했다.

인생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나는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자신에게 묻고 있다. 어린 날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 난 이담에 커서 무엇으로 성공하지."

그때 아버지는 말했었다.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한 다음 니 소질에 맞는 걸로 결정하자."

그때는 인생의 목적이 오직 성공하는 거였다, 남을 제치고 정상의 고지에 우뚝 서 승리의 깃발을 날리는 게 성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승리의 깃발을 꼽지 못한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패배한 것일까. 대학 다닐 때 어린이 대공원 옆에 있는 대학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팔뚝만한 잉어가 호수를 떼지어 놀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는 남자가 물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당연히 성공하는 것이라 말했다.

"성공이라면 어떤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치가 있는 건가요?"

그가 한꺼번에 그것도 자세하게 묻는 바람에 나는 당황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그에게 딴지를 걸었다.

"그러는 그쪽은 성공할 자신이 있나 보죠?"

"전 전 자신은 없지만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순간 극심한 혼미를 느꼈다. 성공=행복이라는 등식이 이 순간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관심사는 성공에 있었지 행복은 그냥 부차적으로 따라 오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도 철이 들자 성공이라는 의지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성공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 아닌가요?"

"그렇지 않죠, 마음의 평안이 먼저입니다."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그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창조해 나갈 작정입니다."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나는 그 얼굴에서 진지함을 보았다. 그러나 외면하고 말았다. 그 대학 캠퍼스에는 유난히 잔디가 많았다. 그는 잔디 위에 앉으며 내게 말했다.

"저 다음달에 군대 갑니다. 기다려 주실 수……."

"전 졸업하면 대학원, 아니 유학가게 될 거 같아요, 지금 하신 말씀 안 들은 걸로
할게요."


거절한 이유는 우선 기다려줄 만큼 그에게 정이 가지도 않았고 외모라든가 그가 가진 조건이 형편없어 보였다. 그는 겉보기에 가난한 고학생 같았다. 단벌 검정 바지에 청커버를 입고 비쩍 마른 몸매에 빈티가 줄줄 흘렀다. 생각도 달랐다. 나는 항상 고지만 바라보는데 그는 낮고 낮은 사람들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나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한마디로 차갑게 결별 의사를 밝힌 나는 뒤로 안 돌아보고 뛰어 달아났다. 설마 했는데 그가 내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할 줄은 몰랐었다.

"세상에는 많은 부조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구조악일 수 있고 이념의 대결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 같은 것에는 관심 없었다. 정치는 정치가에게 경제는 경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으며 그가 에프터를 할 때 응해 준 걸 내내 후회하고 있었다.

세상에 별종도 다 있지 싶은 마음으로 응해 주었는데 결국은 데모꾼이나 선동꾼 같은 말을 주워대는 것이었다.

"저는 정치니 이념이니 한 그런 것에는 관심 없거든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집으로 전화를 한다거나 학교로 찾아오는 일 없으면 좋겠네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네에."

그는 거의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나를 다시 한번 자기 학교 캠퍼스로 불러 뜻도 통하지 않을 고상한 이야기를 주워댄 것이었다. 나는 태생이 정감이 깊거나 동정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하고 까다롭고 이기적인 편이었다. 그런 내게 대고 사회 정의나 지껄여대고 알량한 정서를 호소했으니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내 인생의 역마차가 끝나던 날, 왜 하필이면 그 말이 생각난 걸까. 하긴 그뿐이랴, 수많은 기억들이 내 무의식을 뚫고 출몰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떡케 살아가고 있는 걸까. 최문기는 만날 때마다 내게 약을 올리며 꼭 복수를 하고 있는 꼴 같다. 성공한 사회인으로 가정의 행복을 발판으로 삼아 내게 복수하는 것 같다.

뭔가 한참 뒤바뀐 느낌이 든다. 세월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도 한참 잘못 돈 것 같다. 얼마 전 TV 뉴스 시간에 보았던 중학교 동창 윤기량은 대학 교수가 되어 해박한 전문지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 다닐 때 우리반에서 반장을 했었다. 엄마가 여고 선생님이었고 아빠는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녀는 4남매 중 맏이었는데 모두 수재였다.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다부지게 자기의 꿈을 밝혔다. 나는 명문대를 나와서 유학을 다녀온 다음 꼭 대학교수가 될 테야. 꿈을 이룬 윤기량은 당당하다.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생을 허비하고 산 내게 무언의 채찍을 가하며 책임소재를 묻고 있다.

어릴 때 장래희망을 여자대통령이라고 했던 민혜윤이에게 성공의 의미에 대해 가르치며 공박하고 있다.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서성이며 과거를 헤매고 있다. 인생의 반을 살아낸 나이에 남은 삶에 대해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거리에 세월의 바람이 불고 있다. IMF보다 더 혹독하다는 경제 혹한의 바람이 사람들 몸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대학은 낭만이 사라져 취업 준비소로 변하고 각박해진 인심은 희망마저 도태시키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포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경쟁의식과 이분법 사고에 목숨 걸던 내가 더구나 지고는 못 살던 내가 포기라는 그물에 갇혀 옴쭉달쭉 못하고 있었다. 임박한 현실 앞에 아!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성격도 변하고 마는 것인가.

어느날 동생이 찾아와 어린이 영어 교습소를 내라고 했다. 아울러 글짓기 교실도 함께 열라고 했다. 내 전공을 살릴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 대신 어린 조카를 품에 안았다. 내 핏줄이 흐르는 살아 있는 생명체. 어느 유명한 여성 정치지도자도 조카를 품에 안고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자기의 소생이 없으니까 조카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기쁨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학 병원과 마주 보이는 곳에 학원을 열었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강사는 따로 두지 않고 내가 직접 뛰기로 했다. 아직 머리가 녹슬지 않았다는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선생님 무슨 대학 나오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초롱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 근처의 대학을 나와서 중학교 교사 4년에다 강남에 있는 학원에 10년 간 다녔지,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난 또."

아이는 알 듯 말 듯 한 말을 삼키며 핸드폰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삐죽이 디밀며 들어왔다. 앞니가 흉하게 튀어나온 여자가 손을 벌리며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빨리 적선을 하라는 표시였다. 여자는 언 듯 보아도 정신병자 같다. 눈의 동공이 풀어져 초점을 잃고 있다. 순간 내 안에 떠오른 문장이 있다.
다시는 후회를 않으리라, 다시는 후회를 않으리라.

"현주야, 돈 천 원 가진 것 있니? 있음 선생님 빌려 주라, 이따 갚아줄게."

아이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여자 손 위에 올려준다. 여자는 고마운지 입을 헤 벌리며 웃더니 이내 돌아서 나간다. 갑자기 그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마음의 평안이 먼저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그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창조해 나갈 작정입니다."


학원 문을 닫고 언덕배기에 있는 집으로 올라갈 때였다. 갑자기 등뒤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렸다. 동네 남자 아이들이 낮에 학원에 들렀던 여자를 향해 내지르는 함성이었다. 그들은 여자의 치마를 들추고 주먹으로 얼굴과 등을 마구 때렸다. 그러면서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여자는 동네 미치광이였던 것이다.

편의점에서 포장된 밥을 반찬도 없이 물에 말아먹으며 즐거워하던. 난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들은 놀라 뒤로 물러간다. 나는 여자의 모습에서 옛 추억을 떠올린다. 여자의 모습이 어딘지 낯익다. 세월의 수레바퀴를 건져 여자의 모습을 추억해 낸다.

슬픔과 고난의 인생길이 여자의 얼굴에 담겨져 있다.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히죽이죽 웃는다.

봉자.

나는 지난 문장을 또 떠올린다. 그때 우리가 사는 골목길 끝에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하꼬방에 사는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한눈에 보아도 모자란 티가 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반편이라 불렀다. 봉자는 동네 사내아이들한테도 좋은 장난감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봉자의 치마를 들추고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발로 걷어찼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난 거리에 정적이 머문다. 여자는 아니 봉자는 어디론가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골목 끝에 흰 담벼락이 보인다.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봉자. 십자로 난 길이 보이고 가운데 건물 안으로 그리스도의 상(像)이 보인다. 봉자는 신발을 벗고 그리스도가 보이는 강대상 앞으로 다가서고 있다.

마루 바닥에 꿇어앉으며 울음을 토하는 그녀.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다. 흰옷 입은 천사인가. 그는 봉자를 위해 그리스도께 간절히 빌고, 그러다 문 뒤에서 엿보고 있던 내게 눈길을 돌린다.
아! 당신은 당신은.

마지막 부분에 나는 생각한다.


나는 경쟁에서 패한 게 아니다. 진정한 승리는 나중에 있다. 진짜 성공은 승리가 아닌 행복에 있다. 그것도 마음의 평안. 평안을 주시는 절대자 앞에 나는 숨죽인 채 부복하고 있다. 그리고서 그에게 승리의 결말을 묻고 있다.

end.
2010-08-23
13:35:43



신외숙
현상



신외숙





글 중독에서 벗어나 돈벌이에 매달리면서 나타난 두 가지 현상이 있다,

그것은 문학무용론의 뼈저린 실제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문학은커녕 작가라는 직업에도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저 모든 걸 돈벌이의 기준에서 생각하기 바빴다. 심지어 글의 가치마저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문학은 문학인들만의 고유물일 뿐이었다.



그 뼈아픈 현실 앞에 나는 더 이상 문학을 고집할 명분이 없어졌다. 등단 이후 13동안 버틸 수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고 축복이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명예나 자부심으로 할 명제였다. 다음은 돈에 대한 나의 가치관의 변화였다. 어릴 때부터 꿈이 소설가였던 나는 항상 내 꿈을 앞세웠고 무엇을 하건 소설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돈가뭄이라는 지독한 (환란)을 겪고 나자 생각이 달라지면서 우선 순위가 바뀐 것이다. 돈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밀린 나머지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워낙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월급 액수가 결코 많아 보이지 않았다. 단편 한편 쓰고 받은 원고료에 비하면 그저 그랬다.



그런데 당장 돈을 손에 쥐고 보니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절박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점차 현실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세상에 돈 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창작마저도.



문학이 정신적 만족감이라면 돈은 현실적 몸과 마음의 수단이었다. 작년에 내가 글에 매달리면서 얻은 원고료 수입이 단돈 10만원이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그나마 소설이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내 자신이 얼마나 싫었던지 한달에 150만원 급여 주는 직장만 나선다면 소설을 영원히 포기하겠노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소설과 돈의 가치를 맞바꾸어 놓고는 스스로 난감해하던 기억이 벌써 7개월이나 되었다. 가뭄에 이슬 방울 적시듯 버는 비용으로 책을 두 권이나 냈다. 그동안 쉬는 날을 이용 단 한편의 단편을 완성한 거에 비하면 감사할 뿐이다. 어쩌다 집에 있으면 문예지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다. 단편 써 놓은 것 있으면 보내라고.



이미 완성해 놓은 단편을 이메일 발송하면서 자신에게 묻는다.

너 아직도 작가니?



바쁜 현실에 매여 창작은커녕 글에 대한 구상마저 머릿속에서 사라져가는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시간이 갈수록 절감한다. 며칠 전 만난 시인에게 말했다.



“등단하기 전에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소설가만 된다면 하고 견딜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돈이 우선이 되어버렸다. 이제 돈 없는 전업작가는 정말 하기 싫다.”



작년에 지독한 돈가뭄을 겪고 나더니 이젠 월급날만 기다려지고 몇 십만 원의 돈이 천군만마처럼 위로와 힘을 준다. 돈이 위로를 준다는 사실 앞에 문학 의지는 납작 숨을 죽이고 말았다. 여러번 강조하지만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일단 소설가만 될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줄 알았다.



돈도 건강도 문학이라는 화려한 명제 앞에 다 무마될 줄 알았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이 오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급한 불 끄는 심정으로 돈벌이에 나섰지만 문학은 아직도 내 정체성에 불을 켜주고 있다. 비록 잘 팔리지는 않지만 서점에 내 책이 나가 있고 또다른 저서 발간을 위해 현실의 아픔을 인내하면서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지금도 나 자신에게 말한다.

누가 인정하든 않든 나는 작가다.



언젠간 또다시 전업작가로 돌아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마저 이루리라
2010-09-24
08: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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