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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왕중왕 전]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왕중왕 전 결과 발표 / 한국문단 박인과 문학평론가 記
창조문학신문  2008-06-28 19:35:00, 조회 : 3,780, 추천 : 228

2008년01월31일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분석, ‘신춘문예 당선작의 왕중왕 전’ 발표

창조문학신문사는 시 부문의 ‘신춘문예 당선작의 왕중왕 전’의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의 신춘문예 당선 시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인 왕 중 왕에 해당하는 시는 영주일보(제주 소재, 신춘문예 제 1회 시행)에서 당선한 이성이의 ‘어떤 사랑에 대해’라고 박인과 문학평론가는 밝혔다.

박 평론가는 신춘문예 작품 분석 내용을 발표하는 것을 망설이며 미루고 있다가 심사숙고 한 끝에 결국 몰매 맞을 각오와 함께 1월이 가기 전에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인과는 “지방신문까지 포함한 신춘문예 당선작(가작포함) 31편을 망라했기 때문에 분석하는 데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으나 실수도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여기 게재되는 작품 분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일 수 있다”, “신춘문예 작품 열람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했으므로 작품의 내용이 간혹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비록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분석이 틀리고 어줍은 표현이 있더라도 신춘문예 당선자들께서 잘 봐 달라”고 이야기하며 “보다 더 나은 문학의 미래를 위해 스스럼없고 깔끔한 담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박인과 문학평론가의 ‘2008 신춘문예 시 작품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다.

♣ 2008 신춘문예 작품 분석 / 박인과 문학평론가

이미 신춘문예의 왕으로 뽑아놓은 위대한 작품들 중에서 또 더 고귀한 왕 중 왕을 뽑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의견이든 수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문학적 힘을 빌어 이 글을 쓴다. 한국문학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들을 모아놓고 ‘신춘문예 당선작의 왕중왕 전’을 진행하는 방법은 시 문장의 팽팽한 긴장감이 전체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가, 문법적 기능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가, 언어의 불필요한 낭비가 있는가, 문장들의 표현 및 전개가 명확한가, 시의 전체적인 치밀성과 함축성, 그리고 시어의 상징성, 주제에 대한 집중력과 시의 운문성, 독자로 하여금 시를 계속하여 읽게 하는 흡인력 등을 살펴보며 그 시적 행위의 능숙함을 합산하여 계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어떤 작품들은 “이런 작품도 신춘문예의 당선작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약한 작품들도 보였다. 시가 시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보았다. 가작으로 선정된 작품이 당선작만큼 좋은 작품도 있었다. 문법의 오류도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점은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요즘엔 교과서 외의 시들을 많이 인용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문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 창작품이 문법을 탈피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즉, 문법을 벗어난 문장의 효용이 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문법 오류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면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잘못 가르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교과서 외의 시’로도 그 작품이 채택되지 못할 수도 있다.

신춘문예 시들을 다 분석하여 일일이 나열하다 보면 이 글이 너무 길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각 작품들에 대해 간단히 몇 마디씩만 언급해 보기로 한다. 그래서 이 분석 자료가 각 작품들의 시 전체를 분석한 내용의 전부가 아니라 몇 가지씩만 예로 들었음을 밝힌다. 그래도 꼭 해야 될 말들이 있을 때는 글이 길어져 있는 작품도 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우선, 순위를 매겨보았다. 1번에서 30번까지 순위가 매겨졌다. 이 순위는 시적 긴장력과 시 전체의 치밀성을 따져서 시어의 긴장력과 시 전체의 치밀함에서 완성도가 높은 시를 우선순위로 올리는 것이므로 어느 시가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아님을 밝힌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순위를 매겨보기도 했는데 그때에는 30번이 1번이 되었다.

이 1번과 30번까지의 순위 또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했으나 주관이 섞일 수도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 순위에 대한 작품 분석은 다음에 이어진다.

♣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의 시적 긴장력 순위
1. 어떤 사랑에 대해(이성이) / 영주일보 당선작
2. 구두 수선공(최일걸) / 광주일보 당선작
3. 오리 떼의 겨울(이지현) / 전북일보 당선작
4. 책장애벌레(이종섭) / 대전일보 당선작
5. 너와집(박미산) / 세계일보 당선작
6. 우리집 등나무(고덕주) / 창조문학신문 공동당선작
7.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유희경) / 조선일보 당선작
8.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 문화일보 당선작
9. 가벼운 산(이선애) / 서울신문 당선작
10. 파문(이장근) / 매일신문 당선작
11.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이은규) / 동아일보 당선작
12. 페루(이제니) / 경향신문 당선작
13. 명함(김지고) / 전북 중앙신문 가작
14. 대추나무(김일호) / 경남신문 당선작
15.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이상미) / 창조문학신문 공동당선작
16.
17. 경건한 설거지(노기민) / 전북 중앙신문 가작
18. 여자의 풍선(오자영) / 경남일보 당선작
19. 차창 밖, 풍경 빈 곳(정은기) / 한국일보 당선작
20.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이언지) / 국제신문 당선작
21. 그 흰 빛(박지선) / 불교신문 당선작
22.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조혜정) / 영남일보 당선작
23. 예의(조연미) / 부산일보 당선작
24. 낡은 의자(양호진) / 동양일보 당선작
25. 대동여지도(조다윗) / 전남일보 당선작
26. 소라의 집(김정임) / 강원일보 당선작
27. 오월의 잠(이은실) / 한라일보 당선작
28. 가족(조성식) / 농민신문 당선작
29. 꽃신 외1편(김소연) / 경인일보 당선작
30. 바람의 일(공인숙) / 전북도민일보 당선작


♣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품 분석 / 박인과 문학평론가

1. ‘어떤 사랑에 대해’(이성이, 영주일보) 분석

이성이의 이 작품에서 ‘끼었다’란 시어에 대해서 언급하면, 문장과 동사의 형태를 살펴보아 자동사로 쓰인 “(연기·안개·구름 같은 것이) 퍼져서 서리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어야 맞는 문장이다. 동사의 과거형(었)을 보면 더욱 이 쓰임이 자동사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끼이다’의 준말인 ‘끼다’의 형태를 활용한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끼이다’의 뜻이었으면 ‘끼였다(끼이었다)’로 사용되는 것이 더욱 알맞을 것이다. 그런데 ‘끼이다’의 뜻으로 사용되어도 그릇끼리(두 개의 그릇이) 서로 끼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표현의 잘못이 드러난다. 이 시에서 그릇 하나는 ‘등 뒤에서 껴안은 상태’라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어는 ‘끼이다’의 뜻으로 혹은 ‘끼였다(끼이었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뜻이 아니면 이 시는 탱탱한 긴장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가 시적 긴장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은 ‘끼였다(끼이었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끼이었다(끼였다)’로 사용하지 않은 이 ‘끼었다’는 부적절한 표현이 된다. 물론 작자에 의해 ‘끼었다’와 ‘끼였다(끼이었다)’를 같은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정확한 표현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끼인 상태’를 ‘포옹’으로 살짝 바꿔놓고 있다. 앞의 시어 “등 뒤에서 껴안은 상태”가 ‘포옹’으로 뒤바뀐 것이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포옹’이란 서로 앞을 보고 껴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적절한 시어들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독자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적 극대화를 이루고 있어서 성공한 시라고 할 수 있다(시는 일상의 언어를 탈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구두 수선공’(최일걸, 광주일보) 분석

‘구두 수선공’은 매 연마다 ‘~다’로 끝나는 서술어가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시에 좀 더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어미(語尾)에서의 변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하겠다. “구두란, 길과 걸음의 교차점”의 시어에서 ‘구두란’의 뒤에 찍힌 ‘,’이 알맞게 자리 잡힌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구두란 길과 걸음의 교차점”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시의 운율과 호흡의 조절을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좀 더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그를 여기까지 내몬 것은 길도 걸음도 아니었다”란 시어는 이 시의 전체적인 상황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구두수선공으로 보이는데 이 시어가 없어도 이 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어가 이 시에서 이 부분에만 나타나고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작자만의 상상력 진술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또한 “구두 방 선반 위에서 / 번득이며 광휘를 뿜어내는 구두가 / 시치미를 떼고 돌아앉는다”에서 왜 ‘시치미’를 떼는지 알기 어렵다(꼭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지만). 또한 이 시어들과 해당 연의 다음의 시어들과의 연결성이 미흡하다. 즉, 선반의 구두와 구두 수선공이 수선하는 구두와의 관계성에서 독자는 혼란스럽다.


3. ‘오리 떼의 겨울’(이지현, 전북일보) 분석

이지현의 ‘오리 떼의 겨울’은 첫 행의 “강 위에 오리가 머리를 숙였다 올린다”에서 ‘강 위에 오리가’의 시어 중에서 ‘에’의 쓰임이 ‘에서’로 되었다면 훨씬 부드러웠을 것이다. 꼭 ‘에’의 쓰임이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는 “오리가 강 위에 머리를 숙였다 올린다” 정도로 해도 좀 더 나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강 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앞에 위치시켜 놓았다고 할지라도 “강 위에 오리가 머리를 숙였다 올린다”는 <3(혹은 1-2)-3-3-3-3(숫자는 글의 자수字數임)>로 되어 너무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결국 삶의 보자기는 혼자 짜낼 수 없다는 것을”에서 ‘보자기는’은 주어로 쓰였다. 여기에서는 목적어가 생략되었다. 그런데 실은 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이 문장에서 ‘보자기’가 주어가 아니라 이 시의 화자, 혹은 ‘오리’가 될 수도 있다. 즉 삶의 보자기를 나(혹은 오리)는 혼자 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표현이 되기 때문에 ‘보자기는’을 ‘보자기를’로 바꾸어야 한다. 이 문장은 문법의 오류이다. “살얼음이 발목을 조여와도”에서 사실은 오리가 헤엄을 칠 때 오리의 발목은 물갈퀴와 함께 물 속 깊이 위치하기 때문에 살얼음과 발목이 만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시적 표현으로서의 잘못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오리떼가 함께 날아오를 때 알았다”의 시어가 “세상 밖으로 일제히 (오리떼가, 괄호 안은 필자가 넣은 것임) 날아 오른다”의 시적 감흥을 저해하고 있다. 이 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상황은 이미 앞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리떼가 함께 날아오를 때 알았다”와 “세상 밖으로 일제히 날아 오른다”에서 앞의 과거형의 시제(時制)에 의해 뒤의 현재형의 시제에 의한 ‘일제히 날아오르는 오리 떼의 영상’은 이미 많이 식상해져 있다.


4. ‘책장애벌레’(이종섭, 대전일보) 분석

‘책장 애벌레’, 이종섭의 이 작품은 먼저 첫 행에서 표현의 잘못이 보인다.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의 문장에서 ‘책장은’에서의 ‘은’의 쓰임에 대해 유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부서지는 것은 책장인데 그 부수는 행위자가 또한 ‘책장’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장은 망치로 부수다’의 뜻이 그것이며, 이 문장의 전체의 서술어를 생각할 때 ‘책장은 ~ 간단하다’의 형식이 되어 문법의 오류가 드러나고 있다. 사실, 이 시에서 책장을 부수는 행위자는 ‘사람’이다. 그래서 ‘책장은’의 ‘은’을 ‘을’로 해야 자연스러우며 시어도 다시 손보아야 한다. 이러한 문법의 오류에 의해서 이 시에서 더 얻는 이득이라곤 없다. 시를 쓴다는 특권이 아름답고 과학적인 한글 문학의 특성과 구조를 외면해도 된다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마지막 행의 “고아원의 밤이 깊어간다”의 시어는 좀 의아하다. 책장(나사못들의 집)이 없어져 공구함에 나사못들이 들어앉아 있는 것은 알겠는데 표현이 너무 갑작스러워 앞줄까지의 감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그 감동을 축소하고 있는 것 같다. 약간 억지스럽지는 않은 것인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일이다.


5. ‘너와집’(박미산, 세계일보) 분석

박미산의 창작품 ‘너와집’의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에서 ‘쇄골 뼈’를 유의하여 보면 ‘쇄골’의 ‘골’이 뼈를 의미하는 한자이다. 그리고 ‘쇄골’은 ‘빗장뼈’를 의미한다. 그래서 ‘쇄골 뼈’라고 표현된 이 시어는 중복된 뜻으로서 언어의 낭비이며 시적 응집력이 풀려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6. ‘우리집 등나무’(고덕주, 창조문학신문 공동당선작) 분석

‘우리집 등나무’는 우선 두 번째 시행에서 약간의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목구멍 가래 돋우는 열섬의 난기류”에서 ‘난기류’의 등장과 상황은 이해되지만 이 시의 전체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이 시행(詩行)이 명사형으로 끝나고 다음의 시행이 명사형으로 시작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난기류’란 시어를 던져만 놓았을 뿐 전체적으로 큰 변화를 주지 않는 시어이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이런 시어가 앞부분에 위치하면 시의 상이 전체적으로 흐려질 수도 있다. “땅 위로 내려온 별들 제 별자리 이름 찾아 헤매네”에서 왜 별들이 갑자기 내려와야 했으며(앞에 별자리는 등장했지만) 땅 위로 내려온 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등장하는지, 정말 별들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등나무의 이파리를 혹은 등꽃잎을 비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별들의 잔상이 작자의 시상에 어떻게 잡혔는지 독자들은 알 수 없고 작자의 상상력에만 머물러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이 시행에서 말하듯 땅 위로 내려온 별들이 제 별자리 이름 찾아 헤매는 것과 뒤의 시행에서 “(등나무가) 밧줄 가닥처럼 꼬이고 또 꼬인 삭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억지스런 상상을 해보면 내려온 별들이 등나무이거나 등나무 꽃잎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내려온 별들의 이미지가 등나무나 등나무의 이파리들이나 꽃잎들에게 투영되는 시적 상황이 그려졌다면 이해될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과 연 사이의 전개가 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작자의 영역에 아직 온전한 시어로 표출되지 못한 시의 영상이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7.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유희경, 조선일보) 분석

유희경의 작품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라는 시는 작자가 이러저러한 상상력으로 문장들을 나열해 놓은 형태이다. 독자가 1과 2와 3의 관계성을 살펴보려고 한다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각기 다른 묘사가 다른 상황처럼 끼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묘사 중심의 문장들이 답답함을 주고 있다. “벤 자리를 또 베였고”에서 ‘또’라는 시어를 사용하게 되면 앞의 ‘벤’도 ‘베인’으로 바꾸어 주어야 옳다는 생각이 든다. 뒤의 ‘베였고’가 피동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또’의 역할이 앞의 행위를 받아서 똑같은 행위가 뒤에 이루어졌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표현이 홀로 동떨어져 보인다. 이 시의 앞과 뒤의 어떤 상황에서도 이 시어의 시적 상상력은 연결되지 못하고 멈추어 있다. 왜 ‘어머니는 ~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는지 독자가 알 수 없다. 차라리 ‘어머니는 ~ 설거지하고 있다’라고 하면 답답함은 조금 풀릴 수 있다. 1과 2와 3으로 분류하여 점을 찍어 놓은 것도 답답해 보인다. 그러나 시어의 조탁에 있어서는 상당히 성공하고 있는 시이다.


8.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문화일보) 분석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은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고 /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라고 시작하며 처음 시행들이 지극히 산문적이고 묘사 중심적인데 시에서 시적 탄력성을 고려해야 한다면 이 부분에서 이 시는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톤이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런데 시어의 적절한 배치와 변화로 인해 답답하거나 지루한 감을 느끼지는 않는 좋은 시이다. 그러나 이 시어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은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고 /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에서 알 수 있듯이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의 ‘는’과 ‘그 아래에는’의 ‘는’ 중에서 한 쪽은 ‘는’을 빼주는 것도 변화와 압축의 좋은 시작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낭송하는 우리의 혀와 생각하는 우리의 뇌는 글자 한 자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은밀하고 내밀하고 응축력 있는 시어의 창출이 필요하다. 시조 창작법을 배워두는 것도 시의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글자 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한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인 시조는 더욱 응축된 시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시조의 틀에 의한, 내밀함과 정형의 리듬과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조탁으로서만 성공할 수 있는 창작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9. ‘가벼운 산’(이선애, 서울신문) 분석

이선애의 ‘가벼운 산’은 앞의 첫 행에서 2행까지, 그리고 뒤의 20행에서 22행까지의 시어들은 모두 빼버려도 이 시의 전체적인 흐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어들을 빼놓으면 시가 좀 더 압축될 수도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시어들이 궁극적으로는 시적 긴장력과 상상력을 감소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자가 아무리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라고 시어를 쾅쾅 박아놓아도 독자는 굴참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독자적인 공감대 획득에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뜻을 표출하더라도 새로운 시어의 창출에 의해서 독자적인 감동을 이끌어 올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라고 진술하지만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작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굴참나무의 직립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것을 두고 편견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 살신성인 하는 중”이라고 진술하는 부분에서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는 ‘나무 는 지금 제 스스로’로 바꾸어야 맞는 표현법인 것 같다. ‘저’와 ‘제’의 차이를 생각해 볼 일이다.


10. ‘파문’(이장근, 매일신문) 분석

‘파문’(이장근)의 “결혼을 코앞에 두고 /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는 표현은 지극히 평범한 언어의 활용이다. 시적 긴장력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소설의 전개처럼 서두를 꺼내면서 시어도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 흔히 접하는 신문의 기사문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모티브(motive)로 시작하고 있다. 시와 산문의 구별은 첫 행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문과 시의 구별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시와 산문을 구분해 놓은 문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후에 이어지는 작자의 상상력의 긴장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문장인 것 같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 여자가 한강에 투신했다.”의 시어를 “여자가 강물에 투신했다” 정도로 바꾸어도 이 시는 충분히 제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생략하고 끝까지 압축하는 것이 시다. 또한 글자 한 자, 한 자에 시적 긴장이란 생명력에 날개를 달기 위해 시어를 알맞게 제자리에 앉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보다 “여자가 한강에 투신했다”라고 하는 표현이 더욱 적극적이며 독자에게 한층 더 상상력의 흥분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는’이라는 글자는 앞의 문장에서 진행된 상황에 대응하여 무엇은(=는) 어떠하다고 표현할 때 더욱 적절한 쓰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라는 표현에서 ‘죽음’의 시어와 ‘삶’이란 시어의 위치를 바꾸어 놓아도 크게 잘못되는 것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뒤섞어도 크게 변함이 없어 보이는 것은 이 시어에 뭔가 헛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사실, ‘투신한 죽음’은 이미 죽음이 아니고 죽음이 투신했으므로 삶이 되기 때문에 ‘삶’이란 시어로 바꾸어도 의미의 변화가 크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투신하는 것’이 죽음의 방향이라면 ‘떠오르는 것’은 삶의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떠오른 삶’이라 했으므로 이는 또 다른 방향으로 역주행(U턴)한 것이므로 ‘다시 떠오른 삶’은 죽음의 방향이다. 그래서 이 ‘죽음’과 ‘삶’이란 시어들은 이 시의 확장될 의미의 측면에서 분석한다면 썩 잘 자리 잡은 시어는 아니라는 함정에 우리는 걸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의 마지막 시어들은 나름대로의 시적 효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이 시어들 앞에서 마무리하는 솜씨를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 마지막 시어들은 앞의 시어들을 반복하는 형식이기도 한 것인데 그럴 필요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시는 잘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의 흐름을 보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처럼 쓰이는 시어를 마치 후렴처럼 덧붙이는 것은 작자의 상상력에서 뭔가 다 채워지지 못한 시의 뼈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시 전체를 다루는 솜씨와 시어의 조탁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자는 죽음의 언어와 삶의 언어를 다루는 테크닉을 더 길러야 할 것으로 추측된다. 시란 바로 죽음의 언어를 삶의 언어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1.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이은규, 동아일보) 분석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이은규)’의 작품은 꽤 생명력 있는 문장들을 이루고 있지만 시어의 애매성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물론 작자는 잘 알겠지만 독자는 잘 모르고 헤맬 때가 많기 때문에 창작자는 제일 먼저 시어의 명료성에 시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이 시의 제목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에서 바람은 바람인데 왜 ‘추운 바람’인지 혹은 무슨 이유로 ‘추운 바람’이어야 하는지 이 시에 나타나 있지도 않고 ‘추운 바람’의 상징도 나타나 있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이 시의 마지막 연에 ‘추운 바람’이란 시어가 단 한 번 나올 뿐이다. 이것은 독자를 우롱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고 못박아 놓았는데 우상이라 함은 형상이 있든 없든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즉 우상이란 단어는 시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사물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형상도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의 문장은 이 시의 전체의 맥락에 특별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가 잘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또한 3연에서 나오는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 맞는 일”의 문장들 중에서 ‘그’를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있다. 1연의 “어느 날부터 그들은”의 시어에서의 ‘그들’은 불특정 복수로 지칭하는 유목민들을 뜻하겠지만, 복수의 형태에서 단수의 형태로 나온 3인칭 ‘그’는 어떤 대상(對象)을 뜻하는지 모호하게 되어있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가 앞에 나오는 ‘깃털’이라고 할지라도 잘 맞지 않는 표현이 될 수 있다. 애매모호한 말이 시어일 순 없다. 시적 애매성이란 것은 정확하고 명확한 표현력 뒤에 깔아놓은 시적 정서의 메타포에 의해서 적절하게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럴 때 시, 혹은 시어의 효능은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의 표현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치적으로 분석해보면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에서 ‘울린다’는 ‘울다’의 사역형이다. 그래서 바람의 목소리(신의 목소리)가 피동의 자세에 있다. 이것은 이치적으로 잘못이다. 바람을 신으로 모신 그들이 바람을 울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에서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 몹쓸 예감’은 ‘예감’이라는 시어의 활용에 충족이 되려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의 시어가 ‘불구의 기억이 될 것이라는’의 시어의 형태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 시어가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로 ‘’를 사용한 문장으로 바뀌어야 ‘예감’이라는 시어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 ‘’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런데 시어는 ‘’의 기호가 없이 활용될 때가 가장 좋을 것이다. 낭송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시어의 조탁의 과정이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중요성을 느낀다.


12. ‘페루’(이제니, 경향신문) 분석

이제니의 ‘페루’는 시보다는 산문 쪽으로 더 가까이 붙어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페루’를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발표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페루’는 운문에서의 리듬감이라기보다 작자의 활달한 산문적 전개가 리듬감 있게 펼쳐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쩌면 시와 수필, 혹은 운문과 산문의 경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와 산문의 경계가 자꾸만 불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말은 어누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정서이기도 하다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시대적 정서가 아니라고 말 하지 않을 사람은 또 없다고 부추겨 말할 사람도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누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유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러나 시와 산문의 경계는 그래도 정해져야 한다. 특히 시적인 독특한 언어와 압축의 맛을 잘 살려낼 때 시다운 시라고 할 수 있다. 이제니의 작품은 산문다운 시로서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인 진술도 철학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명확한 색깔로 독자와 자신의 감동에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는 문장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고 하는 문장처럼 어쩌면 존재와 자아의 사이에서 빈 껍질의 충만을 기대한다고 할지라도 시로서 산문다운 시의 형식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이쯤이면 망각의 세월 건져낼 만한 오만한 사람들의 언어적 희롱을 잘 꼬집고 있는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판단하기에 주저할 수 없다는 언어의 유희적 상태가 전반적인 흐름이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당신은 말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이 글도 전체가 시다. 시는 그처럼 시시한 것인가.


13. ‘명함’(김지고, 전북중앙신문 가작) 분석

김지고의 ‘명함’은 당선작이 아니고 가작이지만 시적 긴장력이 튼튼한 작품이다. “고도의 추락 문득, 하늘마저 가볍다”의 문장에서는 ‘추락’ 다음에 ‘.’라도 있다면 더 시어가 명확히 보일 것인데 오자인지는 몰라도 ‘.’ 등 어떤 표현 없이 ‘추락 문득’이라고 이어지는 데에서 문장의 모호성이 발생한다. “그만 놓쳐 버린 나비의 슬픈 눈을 보았는가”의 문장은 전체적인 시상의 전개에서 아리송한 구절이다. 나비가 무엇을 놓쳐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시가 다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상의 전개에 무리가 있는 듯하다.


14. ‘대추나무’(김일호, 경남신문) 분석

김일호의 ‘대추나무’는 시적 시점의 불일치 등을 보이고 있다. “한꺼번에 쏟아져 골목 흥건한 / 어머니 귀 뚫고 나온 저 소리 / 소쿠리 가득 담겨 들어간 대추 / 처마 끝 물구나무 서서 / 풍경 소리 댕강댕강 / 한 철을 날아간다”에서 ‘댕강댕강’이란 시어는 이 시의 첫 행에 나오는 ‘대추’가 댕강거린다는 시어를 따온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 대추가 풍경이 되어 풍경 소리를 낸다는 표현인 듯하다. 그런데 이 시어들 중에서 대추가 ‘댕강댕강 날아간다’는 시어가 오기 전에 이미 많은 대추들이 골목에 떨어져 소쿠리에 가득 담겨진 상황을 바로 앞에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풍경소리 댕강댕강 / 한 철을 날아간다’는 표현은 시적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일어난 과거적 상황을 다시 현재형으로 서술하는 것은 어법상 불편한 묘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시어들의 연결선상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추론은 ‘어머니 귀 뚫고 나온 저 소리’가→‘소쿠리에 가득 담겨 들어간 대추’이고 이 ‘소리(대추)’는 또 ‘처마 끝 물구나무 서서’→‘댕강댕강 한 철을 날아간다’는 표현이 될 수 있어서 시어들의 시적 관계성에 혼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미 떨어져 소쿠리에 담겨진 대추가 처마 끝에 다시 붙어서 날아간다는 발상도 이 시의 명쾌한 상상력을 저해하고 있다. 물론 작자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안다. 그런데 시의 구조가 연 구별도 없이 그렇게 상상되도록 배열되어 있다. 시가 연 구별이 없이 창작되려면 시적 시공간의 적절한 배치에 대한 숙련된 테크닉도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15.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이상미, 창조문학신문 공동당선작) 분석

이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이상미)는 급박한 시상의 전개가 시적 풍요와 여유를 살짝 비켜가고 있다. 이 시의 급박한 시상의 전개는 아직 표현되지 못한 응축된 시어들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5연과 6연의 사이가 바로 그 부분이다. “거둬 낸 풍경 몇 점만이 / 손잡이 나간 / 달력 속으로 들어온다”라고 한 시어 뒤에 따라오는 연의 첫 단어가 ‘잠깐’이다. “잠깐, / 공복 중인 우주와 눈 마주치는”에서 이 ‘잠깐’이란 시어가 5연까지의 시상의 흐름을 새로운 이미지로 돌려놓는다. 즉, 첫 연에서 나오는 그녀에 대한 상황에서 가을의 풍경을 오버랩 시키다가 ‘잠깐’이란 시어를 기점으로 다시 ‘가을의 풍경을 끌어오다 ‘그녀’의 차도가 없는 병은 ‘늦게 퇴근하는 가을 탓이다’라며 얼른 마무리를 해버린다. 뭔가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시라는 것을 뜻한다. 시에서의 압축과 함축된 의미는 잘 드러나고 있는데 너무 압축하다 보니 시의 허리 부분에서 뭔가 잘려나간 것이 있다. 그래서 이 시의 허리가 허전한 것이다. ‘잠깐’이란 시어를 활용했기 때문에 이 시가 완성이 되었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 ‘잠깐’이란 시어가 독자의 주위를 환기시키며 독자의 상상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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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경건한 설거지’(노기민, 전북중앙신문 가작) 분석

노기민의 ‘경건한 설거지’는 가작치고는 잘 창작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품이 나고 후회가 들고 / 씻겨나가고 결심을 해도 / 그래도, 닦이지 않는 얼룩.”에서 <~고, ~고, ~고, ~도 그래도, 닦이지 않는 얼룩.>의 흐름에서 원칙적으로는 <~도, ~도, ~도, ~도 그래도, 닦이지 않는 얼룩.>이 훨씬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거품이 나고 후회가 들고 / 씻겨나가고’와 ‘결심을 해도’는 자연스럽게 연이어지면서 어울리지 않고 있는 문장이다. 또한 ‘아, 나에게도 세척기가 있다면!’이란 감탄문은 오히려 시적 완숙력을 흐리게도 한다. “아, 나에게도 세탁기가 있다면! / 일정한 습도와 온도에서 / 나는 젖어졌다가도 금세 물기 없이 / 말라지고, 오랜 시간 물에 담겨져 / 불려 지지는 않을 테니”의 문장 전체의 흐름이 맛깔스럽지 못하다. ‘있다면’과 ‘~테니’의 용법을 잘 활용하기 위해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에서 ‘있다면!’으로 시작되어 ‘테니’로 끝나는 상황이 시적 정서의 리듬감을 감소시키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있다면!’에서 ‘!’를 빼고 (낭송할 때는 ‘!’가 표현되지 못하므로) 생각해 볼 때, 일반적인 창작에 의하면 ‘~있다면 ~일텐데’의 표현도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18. ‘여자의 풍선’(오자영, 경남일보) 분석

오자영의 ‘여자의 풍선’은 시어의 투박성이 시적 응집력을 감소시키고 있다고 본다. “개 발자국에 밟혀 사라진 보랏빛 환상이며”의 문장에서 ‘개 발자국’이라는 직설적인 언어가 시의 리듬과 시적 은밀함을 더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될 수 있다. “알알한 합성고무냄새가 집안 가득 차기 시작했어요”라는 문장은 없어도 이 시는 잘 완성될 수 있다. 응축의 묘를 살리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문장에서 ‘합성고무냄새’의 시어를 끌어옴으로써 특별한 시적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지 그 말을 던져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사족이 아닌 사족이 될 수 있다. 또한 ‘합성고무냄새’는 이 시에서 별다른 효용도 없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공해에 대한 염려증을 키우게 할 수도 있다. 단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글쓰기를 한다면 우린 죽음의 글보다 생명의 글들을 많이 써야 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 피는 그 쪽으로 흐르고 그 쪽으로 떠돈다”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은규의 시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이 떠오른다. 우리가 합성고무냄새를 떠올릴 때 우리의 인상은 찌그러지고 그만큼 우리의 몸도 피도 정서도 합성고무냄새를 직접 맡은 것처럼 반응하여 건강을 해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시적 언어는 물론 모든 언어는 그래서 우리의 인체의 프로그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문학, 희망의 문학, 평화롭고 생명력 있는 언어가 우리의 세대에 꼭 필요하다.


19. ‘차창밖, 풍경 빈 곳’(정은기, 한국일보) 분석

‘차창밖, 풍경 빈 곳’은 우선 제목이 적절한가 생각해 볼 일이다. 제목에서 독자는 ‘풍경의 빈 곳이 어떤 상태일까’ 혹은 ‘빈 풍경은 어떤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읽어갈 수도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풍경의 이야기로 채워놓고 있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차창밖으로는 풍경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풍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어와 주제에 대한 시적 난해성이 시를 시답게 한다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데 그 난해성으로 인하여 시적 감흥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경우는 필요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 시적 감흥이 동반되지 않는 난해성이란 독자를 우롱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시어의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꼭 설명을 곁들여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쓴다면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다. 문학의 표현이 자신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이 있으면서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문장과 연결되는 단어들이 표현 못하는 애매성을 탈피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이 시의 긴장력은 중반부터 느슨해져 있음을 본다. 시를 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시어의 효능과 전체적인 무게를 생각해 보며 긴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20.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이언지, 국제신문) 분석

이언지의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는 첫 3행에서 이 작자의 시적 표현력과 응축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뒤로 이어지는 시어들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이 시는 조금 더 압축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흥미위주로 나열된 시어들이 시적 긴장력을 저해하고 있고, 이 시의 활달한 속도감은 오히려 밀도 있는 상상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완급의 미학이 필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통일되지 못함으로써 응축된 시적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통일되지 못한 나열은 산문에서도 어려운 문맥의 요소이다. 현대시가 자꾸만 독백적이며 복잡해져 갈수록 시적 감수성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본다.


21. ‘그 흰 빛’(박지선, 불교신문) 분석

박지선의 ‘그 흰 빛’은 제목이 신선하다. 그 흰 빛은 어머니 사랑으로 귀결된다. 너무 짤막짤막하게 시의 행이 이어짐으로써 시적 응집력에 실패하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배가시키는 측면에서의 흡인력을 약하게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 “하나의 풀씨가 / 한 필의 베로 태어나기까진 / 잿물로 살과 피를 녹이는 고통이 필요하다. / 흐르는 시냇물 속에서도 / 물살 거스르지 않고 버티다가 / 올곧은 백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는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이 잘 조화되지 못하고 있다. 뒤의 문장이 앞의 문장의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명확한 설득력이 약하다. 그것은 ‘흐르는 시냇물 속에서도 / 물살 거스르지 않고 버티다가’의 구절이 끼어있어서 그런 듯하다. 또한 ‘올 곧은 백발’이란 시어에서 ‘백발’이 되어야 한다는 시어는 ‘잿물로 살과 피를 녹이는 고통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말하고 있겠지만 ‘올 곧은’의 시어는 ‘잿물로 살과 피를 녹이는 고통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되지 못하고 ‘흐르는 시냇물 속에서도 / 물살 거스르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되어서 전체적으로는 문장의 정확성이 흐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설명조의 시어들이 시적 긴장력을 풀어놓고 있다. “한 번 흘러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오래 견뎌야만 하는 것을 알았을까.”의 문장들은 사족처럼 보인다. ‘한 번 흘러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란 시어는 이 전체적인 시의 흐름에서 아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 ‘오래 견뎌야만 하는 것을 알았을까.’의 상황은 위에서 이미 다 제시된 것이다. “다시 수많은 시간을 / 모닥불로 담금질을 당하는 동안에도”, “비로소 그 흰 빛 모시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다.” 등에서.


22.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조혜정, 영남일보) 분석

이 시는 상상력으로 인류의 시간을 말의 역사로 그리고 있다. “천 개의 나뭇잎들이 천 개의 귀를 붙잡고 / 흔드는 소리, 목구멍 속에서 쏙독새 울음소리가 / 허공을 물고 터져나온다 / 처음부터 거기 살고 있는, 아직도 증발하지 않은 / 침묵의 긁힌 알몸이 보인다 / ” → 말과 침묵의 대비는 이 시의 역사적 의미의 백미다. “처음 찍은 발자국이 길이 되는 때 / 말의 반죽은 말랑말랑 할 것이다”를 “처음 찍은 발자국이 길이 되던 때 / 말의 반죽은 말랑말랑 했을 것이다”로 한다면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처음 찍은 발자국’이 신석기 시대의 발자국을 의미하는 것이 될 때 이 시가 더욱 시적 전개에 대한 선명성을 부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투명한 시어의 조탁과 선명한 시적 전개가 필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23. ‘예의’(조연미, 부산일보) 분석

이 작품의 제목은 주제를 전체적으로 받쳐주지 않고 시적 상황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을 보면 어머니가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운다고 했다. 시행의 전개를 보면 그렇게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 고르지 못한 / 그녀의 마음자리에 /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에서 ‘울던 새벽’은 과거형인데 ‘바닥에 눕는다’는 현재형으로서 시제의 불일치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시제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안감을 극복하여 좀 더 안정적인 시의 창작이 이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울던 새벽’과 시제가 일치하려면 ‘바닥에 누웠다’로 해야 한다. 현재에 있어서 과거의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의 중반부에서 “몸의 뜨거움”이 나오는데 마지막 구절에는 “데워지는 맨 몸”이 나온다. 이것은 시간의 전개상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시의 중간 정도를 보면 이미 몸이 뜨거워졌는데 하반부에서 몸을 데우고 있다는 표현이 있어서 감동이 덜하다. 중반부에서 뜨거워진 몸이 벽 너머의 당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시의 전개상 앞에서는 뜨거운 몸이고 뒤에서는 이제 데워지는 몸이라는 표현이 시적 깊이를 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 숨길 수 없는 것들을 /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일상 / 아니다, 아니다 그러나 /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에서 중복된 시어들이 리듬감을 살려내고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최대한 생략해야 하는 시적 특성에 비추어 보면 ‘아니’가 세 번이나 중복되어 언어의 낭비에 대한 손실이 더 큰 것도 같다.


24. ‘낡은 의자’(양호진, 동양일보) 분석

이 시의 술어 부분을 보면 “~꿈을 꾸었네, ~베이고 말았다, ~지쳐버렸다, ~기댄다, ~그윽하다, ~가는 것일까, ~흐르고 또 흘렀네, ~흘러간다, ~냄새가 난다” 등이다. ‘~꿈을 꾸었네’와 ‘~흐르고 또 흘렀네’는 시의 틀 속에서 다른 술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네’와 ‘다’의 글자에 따라 시의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심호흡 한껏 낡은 의자 깊숙하게 몸을 기댄다”는 마치 ‘심호흡’이 주어인 것처럼 이루어진 문장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문장이 좀 잘못된 것 같다. 원래의 뜻은 “심호흡을 한껏 하면서 낡은 의자 깊숙하게 몸을 기댄다”일 것이다. “내가 기댄 저 낡은 의자 어디에서 왔을까”의 문장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의자에 기대고 있다면 ‘저 낡은 의자’라 하지 않고 ‘이 낡은 의자’라고 해야 한다. ‘내가 기댄’이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댔던 저 낡은 의자’나 ‘내가 기댈 저 낡은 의자’라고 한다면 이 문장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는 오직 현재형만이 사용될 수 없는 시어이다. “늘 바다에는 산맥의 초록 이끼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한 문장으로만 볼 때는 ‘바다에는’을 ‘바다에서는’으로 바꾸면 좀 더 명확한 문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는 ~냄새가 난다’가 아니라, ‘바다에서는 ~냄새가 난다’라고 하면 명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산사의 눈 내리는 날, 풍경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까 ~ 굴참나무에 떨어지는 이슬 방울의 청아한 공명 느꼈을까”에서 ‘눈 내리는 날’을 ‘눈 내리던 날’로, ‘굴참나무에 떨어지는’을 ‘굴참나무에 떨어지던’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뒤에 과거형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꾸지 않고 더 시적 충실함을 기할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이 문장은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다.


25. ‘대동여지도’(조다윗, 전남일보) 분석

‘대동여지도’는 시에 가까운 시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시라고 할 수 있다. “가슴에 텃밭 한 평 가꾸던 이유가 옛 지도의 성지처럼 신성함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에서 ‘이유’가 ‘신성함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문장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유가’를 ‘이유는’으로 고친다면 문맥이 잘 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에서 문장을 다섯 번이나 끊어놓았는데, 너무 많이 끊어놓음으로 해서 시적 감각이 단절되는 것처럼도 보인다. 세 번 정도 끊어놓아도 충분할 것이다. “‘모든 길은 다시 하나의 길로 마주본다’고 여우비가 산 / 자와 죽은 자와 떠나간 자의 갈림길에서 등고선을 깊게 새겨두었다.”에서는 “‘모든 길은 다시 하나의 길로 마주본다’며 여우비가 산 / 자와 죽은 자와 떠나간 자의 갈림길에서 등고선을 깊게 새겨 두었다”로 바꾸어 놓으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고’와 ‘며’의 차이가 문장의 깔끔한 생명력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6. ‘소라의 집’(김정임, 강원일보) 분석

‘소라의 집’은 여성적인 호소력과 포용력이 있지만 문장의 긴장력과 응축력, 또한 정확한 표현법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여기서 정확한 표현법이란 시 창작의 과정에서 굳이 어법상 틀린 말을 쓸 필요가 없거나 그 언어를 사용하여 특별한 시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빈집의 적막이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올라 / 밀물대신 갯내 나는 뻘밭을 메워가고 있어요”의 문장은 윗 연에 붙는 것이 더욱 알맞은 방법일 것이다. ‘뻘밭을 메워가고’에서 기본형 ‘메우다’의 용법을 잘 생각해 볼 일이다. ‘메우다’는 보통 어떤 ‘공간’을 메우는 뜻으로 많이 활용되는 언어이다. 여기서 ‘뻘밭’은 공간이 될 수 없고 그냥 ‘뻘밭’일 뿐이다. 억지스런 상상을 하자면 아마도 ‘적막’이 메우는 것은 ‘뻘밭’이 아니라 뻘밭 위의 허공일 것이다. 우리는 일단 아름다운 한글의 정확한 표현법을 익히고 볼 일이다. “호기심 많은 쭈꾸미가 소라의 빈 집으로 스며든다 지요”에서 ‘쭈꾸미’의 표준어 ‘주꾸미’를 사용하는 것보다 ‘쭈꾸미’를 사용하면서 더 얻는 시적 이익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는 ‘주꾸미’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스며든다 지요’에서도 정확한 표현은 ‘스며들다’가 아니라 ‘기어들다’일 것이다. 주꾸미가 물처럼 스며드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발로 빨판을 이용하여 기어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기어들다’ 대신 ‘스며들다’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특별한 이익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도 그냥 ‘주꾸미가 기어들어간다’는 뜻의 표현을 사용해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상황 없이 정확한 표현법을 일부러 피해가는 것만이 좋은 시적 창작의 과정은 아니라고 본다. ‘색칠한 대문’의 시어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소라의 껍질은 문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냥 구멍만 있을 뿐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 능소화 빛으로 색칠한 대문을 열고 / 미로같이 꾸불꾸불한 계단을 내려갔을 테지요”의 문장도 윗 연에 붙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또 ‘계단’이란 표현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작자의 상상력은 자유지만 알맞은 상상력들이 정확하게 꿰어질 때 더욱 시적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소라의 집은 계단이 없고 미끄러운 구멍 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꿈은 꿈꿀 때”의 표현도 ‘꿈’이 여러번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어로 대체한다면 더욱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집을 지을 때 벽돌 하나하나가 정확한 위치에 알맞게 들어앉아야 그 집이 튼튼하고 무너지지 않듯이 시의 창작과정에도 같은 원리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27. ‘오월의 잠’(이은실, 한라일보) 분석

이은실의 ‘오월의 잠’은 자신의 상상력을 시화하는 데에 있어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명확한 언어를 치열하게 창출해야 함을 느낀다. 작가의 상상력이 작가 안에서 머물지 않고 표출된 언어로서 타인의 심장에 꽂히려면 대중의 언어, 혹은 시적 언어에 의한 치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말의 정확한 은유와 상징을 연구하고 한글 문법을 최대한으로 준수하며 변화를 시도할 때 가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성이의 작품 ‘어떤 사랑에 대해’는 정확한 표현법은 아닐지라도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성공한 시가 된다. ‘오월의 잠’이 모호하게 보이는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이 시의 틀을 입는 과정에서 상황이 혼란스러워져 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사막이 될 사랑과 목마름 하나로 건너야 할 기억의 행방을 / 찾아내는 것 / 나무들의 소문이 심상치 않다”의 문장에서 ‘찾아내는 것’과 ‘나무들의 소문이 심상치 않다’의 언어 사이에 이미지의 끈이 단절되어 있음을 본다. 또 “심장의 한 켠에 푸른 병조각이 들어차고 / 이 도시에선 어떤 나무이든 술의 날들을 깨뜨리지 않으면 / 조금씩의 간격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의 문장들도 모호하다. ‘심장의 한 켠에 푸른 병조각이 들어찬다’는 진술은 거짓이다. 이 문장이 거짓이 되지 않고 시어가 되려면 ‘심장의 한 켠에 고통의 병조각이 들어찬다’로 한다면 거짓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병조각’은 ‘고통의 병조각’이므로 시어의 창출에 의한 수사(修辭)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월의 잠’에서의 ‘병조각’은 시어가 아닌 정말로 심장 한 켠에 푸른 병조각이 들어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무이든’은 ‘나무든’으로도 가능하다. ‘어떤 나무이든 술의 날들을 깨뜨리지 않으면 / 조금씩의 간격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의 표현도 독자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다. ‘조금씩의 간격’도 어떤 간격인지 이해가 안되며, 나무가 술의 날들을 깨뜨려야 한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든 나무를 사람으로 표현하든 거기에 합당한 시적 상황이 독자에게 전달되어져야 한다. 이런 점들이 거의 시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고 행과 행 사이의 문맥이 자연스럽지 못함은 독자들에게 난해한 시로 혹은 모호한 시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28. ‘가족’(조성식, 농민신문) 분석

시 ‘가족’은 수필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 그 옆에 어머니 호미는 가장 많이 빌려보는 연애소설 같다”에서 ‘옆에’의 시어가 ‘옆의’로 바뀌어야 맞다. 그렇지 않다면 ‘옆에 있는’이라고 바꾸든지 해야 한다. ‘그 옆에 ~ 연애소설 같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본다.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의 표현은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삽은 이가 빠진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주걱의 둥근 날을 가진 넉넉한 호미”에서 호미가 밥주걱의 둥근 날을 가졌다고 진술하는 것이니 잘못되었다. 호미에는 밥주걱이 붙어있지 않다. 여기에서 ‘밥주걱 같은 둥근 날을 가진 호미’라고 하면 맞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 옆에 장난처럼 걸려있는 아이들의 호미가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밭에 나가실 때 말동무로 따라 나서는 동화책 같이 착한 호미가 한집에 산다”에서 ‘장난처럼 걸려있는’의 표현이 어떤 상황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아이들의 호미가 있는데’의 ‘아이들의 호미’와 ‘동화책 같이 착한 호미가 한 집에 산다’의 ‘동화책 같이 착한 호미’에서 ‘호미(아이들의 호미)’가 중복되어 있다. 이 중복은 ‘있는데’의 언어에 의해서 표현상 어울리지 않게 되어 있는 듯하다.


29. ‘꽃신’ 외1편(김소연, 경인일보) 분석

김소연의 ‘꽃신’과 ‘비’는 시적 표현에 대해서 심사숙고 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꽃신’의 작품에서 “어머니 얼굴에 / 꽃 지고 / 단풍마저 떨어져 / 잔가지들만 / 힘없이 흘러내린다”의 표현은 어머니 얼굴에 왜 꽃이 떨어지며 단풍이 떨어지고 잔가지들이 흘러내리는지, 살아계신 어머님 얼굴 위로 잔가지들이 떨어져서 흘러내려도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는지 알 수 없게 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은유의 방법을 문법대로 잘 활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협화음이다. ‘꽃’과 ‘단풍’과 ‘잔가지들’은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묘사하는 것 같은데 정확한 문법의 활용이 요구되는 글이다. 이런 글은 외국어로 번역하면 더욱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비’의 작품에서 “비닐 덮인 신문지 위로”에서 ‘덮인’ 것은 신문지이고 덮은 물체는 비닐이다. 그래서 ‘비닐’을 ‘비닐로’로 표현해야 더욱 자연스러워진다고 본다. 또한 ‘신문지를 덮은 비닐 위로’로 한다면 더욱 명확한 상황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에서 ‘엊저녁 남은 찬밥’은 ‘엊저녁에 남은 찬밥’이라고 하면 선명한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엊저녁 남은’은 엊저녁이 남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꽃신’의 시어 ‘신발’과 ‘비’의 시어 ‘신발’들은 ‘신’으로 해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발에 발을 담근다”에서 보면 발에 발을 담그는 형식이 되기도 한다. ‘신발에 발’의 시어에서 ‘발’이 두 번 들어가고 있다. 시는 최대한 응축해야 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30. ‘바람의 일’(공인숙, 전북도민일보) 분석

공인숙의 ‘바람의 일’에서 ‘바람’이라는 시어가 9번이나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시 전체에서 맥이 풀린 느낌이다. “안녕하며”란 시어도 감각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 시어인 것 같다. ‘다만’이란 시어는 ‘오로지 그 뿐’이란 뜻으로서 이 시의 흐름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다만’이란 시어에 관계된 문장들이 그 뒤로 17행이나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 눈꺼풀을 힘겹게 하는 것도 ~ 꽃잎의 연서를 날리는 것도 ~ 마을로 내려오게 하는 것도 ~ 향기로 흔들어 주는 것도 ~ 한 점 살이 되게 하는 것도 / 바람의 일일겁니다”라는 문장의 이미지가 모두 ‘다만’이란 시어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 같이 보인다. ‘다만’이란 시어는 이 시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의 뜻은 ‘오로지 그 뿐’이란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상황을 이끌기에는 부자유스러운 단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릎베개에 옛 이야기 듣는 아이”는 문법적으로 잘못된 것 같다. “무릎베개에서 옛 이야기 듣는 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에’와 ‘에서’는 그 쓰임이 다르다. “수많은 별”도 잘못인 것 같다. “수많은 별들”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 점 살이 되게 하는 것도 바람의 일일겁니다”에서 ‘한 점 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살’이 ‘평화의 살’이든 ‘믿음의 살’이든 시적 수사(修辭)가 이루어지면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공인숙의 작품 ‘바람의 일’을 끝으로 2008 신춘문예 작품 시 부문의 분석을 마친다. 2008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귀중한 시인님들, 모두 건필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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